이글은 인터넷 신문 오마이뉴스(www.ohmynews.com)에 제공된 글입니다
http://www.ohmynews.com 사이트에서 기사검색 에서 비파괴를 치시면 관련 글을 볼수 있습니다.
<체험>북한에서 비파괴검사 생활(3)
부제 : 북한 생활에 적응하기
신흥장여관에서 저녁과 함께 잠간의 휴식을 취한 후 최종 목적지 금호지구로 출발하였다.
나는 포만감을 느끼면서 이제껏 깊이 가지고 있던 긴장감은 늦추어 놓았다.
어느덧 해도 저물어 어두움에 조금씩 휩싸여 갔으며 창밖으로는 인가가 있는데도 불빛이 거의 보이지 않았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전력부족으로 대부분의 일반 주민들에게는 전기가 잘 공급되지 않는다고 들었다, 단편적으로 북한의 전력 난이 어느 정도인지 짐작이 가는 대목이었다......
덜커덩하고 버스가 요철부분을 지날 때 나는 눈을 떴다. 피곤에 쌓였는지 어느 사이 나는 깜박 잠이 들었던 것이다. 눈을 비비고 주위를 둘러보니 모두들 불편한 자세로 않아 있으면서도 곤히 잠이 들어 있었는데 오직 운전기사와 우리를 안내하는 북한 당 간부만이 무덤덤한 표정으로 앞을 주시하고 있었다......
그 후로 나는 잠간씩 잠에서 깨어나곤 하였지만 밀려오는 피로를 이기지 못하고 목적지에 다달할 때까지 눈을 뜨지 못했다.
어딘가 멀리서 들려오는 듯한 함성과 함께 박수소리가 내 귓가를 자극하여 눈을 떠보니 밝은 전등불빛아래 수많은 사람들이 우리를 환영하고 있었다. 그들은 다름 아닌 먼저 이곳에 와서 생활하고 있는 우리측 기술자들이었다.
우리가 이곳 목적지인 금호지구 KEDO 주거지역에 도착한 시간은 밤11시정도 되었다. 그러니까 서울 김포공항을 떠나 14시간만에 도착한 것이다. 서울과 이곳까지 고속도로가 뚫렸다면 3~4기간이면 충분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또 비행기 직항로가 개설되어 있다면 1시간 이내면 될 것인데......
모두들 뜨거운 환대 속에 자기가 속해있는 회사와 조직 속으로 숙소를 향해 뿔뿔이 흩어졌다.
나는 업무와 관계 있는 시공 사와 함께 같은 숙소에서 머물게 되었다. 이 숙소는 이제 막 신축해서 완공된 3층건물로서 그 구조는 방2개, 거실, 주방으로 20평형 APT구조와 똑같은 시설을 찿추고 있어서 아무런 불편을 느끼지 못했다. 이렇게 해서 긴 여정 끝에 비로소 첫날밤의 잠자리에 들었다......
다음날 아침 6시 30분에 기상하였다, 이제부터 본격적인 북한에서의 생활이 시작된 것이다.
이곳에서의 하루 일과는 아침, 점식, 저녁을 모두 부지내 식당에서 이곳에 와있는 우리 기술자 400여명이 식사를 하고 각 업무에 맞게 발전소 부지에 가서 일을 하는 것이었다.
이곳 식당은 한전에서 위탁하여 운영하는 회사가 맡고있으며 모든 음식물은 남에서 가져와서 요리하므로 남에서와 똑같이 밥과 찬을 먹기 때문에 음식으로 인한 애로점은 없었다.
이곳의 주변 상황은 발전소가 세워지는 발전소 건설지역과, KEDO인원이 주거, 후생, 복지, 여가시설이 있는 주거지역, 그리고 골재채석지역으로 나눠져 있으며, 주거지역과 발전소건설지역은 8km정도 떨어져 있어서 차량으로 이동하며 이 도로는 아스팔트 4차선으로 우리기술진이 직접포장해놓은 곳이라 남한의 도로와 별반 다를 게 없었다, 이 이동 경로는 KEDO직원은 누구나 자유로이 통행할 수 있는 곳이며 이 사이사이에 북한 주민이 살고 있는 마을이 있었다.
이곳에서 내가하는 주 업무는 Pipe Line 용접부 및 유류저장 탱크 현장제작에 따른 품질을 확인하는 비파괴검사(NDT)를 하기 위한 업무였다. 이 업무를 하기 위해 옆에서 나를 보조해주는 2~3명의 인원을 북한근로자로 충원하기로 되어 있었는데 북한과 KEDO와의 임금협상이 잘되지 않아서 이원을 배정 받지 못했다. 원래는 북한근로자 100여명이 우리측 인원과 함께 작업을 진행하고 있었는데 북한측의 무리한 임금인상 요구로 인하여 북한근로자를 대폭 줄였기 때문에 그 여파가 나에게까지 온 것이다.
그러나 이곳에서 일을 하면서 북한 당 간부와 북한 근로자들과 함께 않아서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시간이 있어서 간간이 진지한 대화를 나누곤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