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우디아라비아에 취직하여 오랫동안 근무하며 정년을 맞이하는 한국인들이 점차 많아지고 있고, 규정집에 나오는 이론적인 절차와 실제 현장에서 체감하는 관행 사이에는 약간의 간극이 존재합니다.
이하의 내용은 제가 근무하는 사우디 아람코의 사례를 기준으로 정년 전후로 사우디에서 실제로 일어나는 일들과 사례들을 정리해 공유하며, 부족한 글 솜씨를 보완하기 위해 Gemini의 도움을 받아 정리했습니다.
사우디에서 정년 6개월 전이 되면 분위기가 확연히 달라집니다. 대개의 경우 현업의 주요 권한과 업무를 후임자나 자국민(사우디인) 엔지니어에게 단계적으로 넘겨주며 사실상 현업에서 손을 떼기 시작합니다.
특히 퇴임 직전이 되면 현장에서는 회사 측의 통보 시점을 둘러싸고 피말리는 상황들이 연출됩니다.
- D-2개월의 일반적 관행과 예외적 사례들:
o 일반적 관행 (D-2개월 전): 사우디 기업 행정 시스템상 보통 퇴임 2달 전까지는 연장 가부를 통보해 주지 않는 것이 일반적인 관행입니다.
o D-45일 퇴직 통보 사례: 한 지인의 경우, 사우디 노동법 및 아람코 규정상 사전 통보 기간(Notice Period)의 최소 한계선인 퇴임 45일을 남겨둔 시점에야 퇴직 수속 진행을 통보받기도 했습니다.
o 퇴임 2일 전 극적 '승인' 사례: 심지어 현장에서는 귀국을 위한 모든 신변 정리와 마음의 준비를 마치고 퇴임을 불과 2일 앞둔 시점에서야 비로소 회사로부터 '정년 연장 승인' 통보를 받은 진풍경도 존재합니다. 당사자로서는 참으로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를 기막힌 반전의 순간이 펼쳐지는 셈입니다.
- 신변 정리의 현실적 어려움: 이처럼 통보 시점이 예측 불가능하다 보니, 퇴임이 임박해서 퇴직 통보를 받게 되면 본인 명의 차량 매각, 통신/임대차 계약 해지, 각종 공공요금 및 과태료 정산, Exit 비자 수속 등 일련의 신변 정리를 완료하기에 현지 행정 처리 속도를 감안할 때 매우 촉박하고 긴박한 상황에 직면하게 됩니다.
- 재택근무 및 조기 귀국: 연장 여부가 끝까지 불투명하다 보니, 무작정 현장에 남아있기보다는 남은 잔여 연차를 몰아 쓰거나 현업 부서의 양해를 구하고 재택근무 형태로 전환해 아예 한국으로 미리 귀국해 버리는 사례도 종종 봅니다.
- 정산 후 출국의 중요성: 현지 사정에 밝은 분들은 "무조건 사우디 현지에서 퇴직금과 금융 정산이 완전히 끝나는 것을 눈으로 확인하고 떠나야 한다"고 강력히 조언합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불안감이나 촉박한 일정 때문에 정산이 다 끝나기 전에 먼저 본국으로 돌아가 대기하는 경우도 제법 많이 발생하곤 합니다.
정년이나 기타 사유로 계약이 끝나 회사가 최종 출국 비자(Final Exit Visa) 수속을 시작하면, 그 즉시 모든 생활 기반이 차단되기 시작합니다.
- 60일의 시한부 체류: Exit Visa가 발급되면 기존 이카마(Iqama, 거주증) 잔여 기간이 얼마나 남았든 상관없이 발급일로부터 60일 이내에 무조건 사우디를 떠나야 합니다. (단, 이카마 잔여 기간이 30~60일 미만으로 얼마 남지 않은 시점에 신청했다면 그 이카마 만료일까지가 출국 기한이 됩니다.)
- 즉각적인 은행 계좌 동결: Exit Visa 절차가 들어가는 순간, 사우디 중앙은행(SAMA) 시스템과 연동되어 현지 은행 계좌가 즉시 동결되고 신용카드 사용이나 해외 송금이 완전히 막힙니다.
- 퇴임월 급여일 정산 및 사택 퇴거 시한: 실제 사례를 보면, 퇴임 해당 월의 정기 급여일에 회사로부터 퇴직금을 포함한 모든 정산을 완료받게 되며, 정산 완료 후 약 1주일 정도의 여유 기간 내에 회사가 제공한 사택을 비우고 나가도록 요구받습니다. 정산부터 사택 퇴거, 최종 출국까지의 시간이 매우 긴박하게 흐르므로 선제적인 대비가 필수적입니다.
일반적인 한국 기업이나 타국 기업들의 경우, 성과급(Incentive/Bonus) 지급 시점에 재직 중이어야만 지급 대상이 되며 중간에 퇴사하면 해당 연도에 아무리 기여했더라도 성과급을 포기해야 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하지만 사우디 아람코(Aramco)의 정산 시스템과 문화는 현격한 차이를 보입니다.
- 성과급 사전 소급 정산 (Prorated Bonus): 아람코는 보통 매년 3월에 성과급이 지급되는데, 3월 이전에 정년 퇴직을 하더라도 퇴사 시점에 맞춰 해당 연도에 근무한 기간만큼 성과급을 사전 계산하여 최종 정산금에 미리 포함시켜 지급해 줍니다. "일한 기간에 대한 성과는 퇴직 여부와 상관없이 철저히 보상한다"는 합리적인 철학이 반영된 문화로, 다른 일반 글로벌 기업에서도 보기 드문 큰 장점입니다.
- 잔여 월차(연차) 100% 금액 환산 정산: 사용하지 못하고 남은 모든 월차 및 연차 역시 하나도 소멸시키지 않고, 퇴직 시점에 완벽하게 일할 계산하여 현금으로 소급 정산해 줍니다.
- 자금 이체 노하우: 따라서 비자 수속을 밟기 전에 이 성과급, 잔여 연차, 퇴직금(EOSB)이 모두 반영된 최종 정산금을 확실히 확인·수령하고, 잔액을 인출하거나 본국 계좌로 100% 송금해 두는 것이 현지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의 핵심 노하우입니다.
- 자사주 및 주식 정리: 아람코 자사주나 개인 주식 계좌를 가진 분들도 비자 발급 전에 반드시 모두 현금화해서 이체를 마쳐야 계좌 동결로 자금이 묶이는 비극을 피할 수 있습니다.
- 발목을 잡는 소소한 것들 (차량 매각 등): 본인 명의의 자동차가 그대로 남아있으면 Exit Visa 자체가 발급되지 않습니다. 갑작스럽게 퇴직 통보를 받게 될 경우를 대비해 중고차 매각 등은 미리 시세를 파악해 두어야 합니다. 통신비 미납, 교통 과태료, 이자르(Ejar) 임대차 계약 등 정산되지 않은 항목이 하나라도 있으면 공항 출국장에서 발이 묶이는 사례가 실제로 빈번하게 일어납니다.
- 무단 출국 시 법적 불이익: 정산 절차나 비자 정리 없이 답답하다고 무단 출국(Huroob 등)을 하게 되면, 자와잣(출입국관리국) 시스템상 사우디 재입국이 영구 또는 수년간 전면 금지(Blacklist)됩니다. 아울러 사법적 문제로 확전될 경우 GCC 국가 간 보안 정보 공유 시스템을 통해 중동 타 국가 입국이나 비자 발급에도 심각한 불이익을 받게 됩니다.
그렇다면 회사가 계약 연장을 제안하고 본인이 동의할 때는 어떤 과정이 펼쳐질까요?
실제 현장에서는 최장 15년까지 계속 연장하며 근무한 극단적인 사례도 있고, 한국인 지인 중에는 4년 추가 연장에 성공한 분도 계십니다. 다만 이 과정은 철저히 회사의 주도하에 냉정하게 진행됩니다.
- 임원급 내부 평가 (D-6개월): 퇴임 6개월 전에 소속 부서 임원급에서 대상자의 가치를 평가하여 연장 절차를 발의합니다.
- 아람코 직영 병원(JHAH) 신체검사: HR로 넘어가면 가장 먼저 신체검사를 받습니다. 아람코 직영 존스홉킨스 병원의 전문의들이 진행하는데, 평소 지병이나 병원 이용 기록을 꼼꼼히 봅니다. 그래도 별다른 지병이 없다면 대개 간단한 문진만으로 당일 적합 판정을 내려줍니다.
- 지루한 내부 승인과 1년 단위 계약: 신체검사를 통과하면 HR과 관계 부서들이 연장 합의를 진행합니다. 연장은 무조건 1년 단위로만 이루어지며, 앞서 언급했듯 이 승인 통보가 퇴임 2달 전 혹은 퇴임 단 2일 전처럼 아슬아슬한 시점에 나오는 사례가 있어 당사자는 피말리는 기다림을 겪게 됩니다.
- 처우 조건: 연장 후 처우는 기존 조건을 그대로 유지해 주는 경우가 많지만, 회사 사정에 따라 삭감된 조건을 제시받기도 합니다.
한국인 기술자들이 사우디에 대거 진출했던 시기가 대략 10여 년 전입니다.
이제 그 당시 인력들이 하나둘 정년을 맞이하고 있고, 연장을 고민하는 분들도 많습니다.
그러나 최근 사우디 현장 분위기는 과거와 많이 다릅니다. 사우디 정부의 Vision 2030 정책으로 인한 자국민 고용 의무화(Saudization) 기조가 매우 강해졌고, 기업들도 고임금 외국인 장기 근무자에 대한 비용 부담을 적극적으로 줄이려 하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실제로 정년 연장 사례는 과거에 비해 현저히 줄어들고 있는 것이 냉정한 현실입니다.
사우디에서의 아름다운 마무리를 위해서는, 연장에 대한 막연한 기대감만 갖기보다는 퇴임 통보가 D-2개월은 물론 D-45일이나 심지어 퇴임 불과 이틀 전에 '연장 승인'이라는 반전으로 찾아올 수도 있음을 염두에 두고 D-6개월 시점부터 명의 차량 정리, 성과급·연차·퇴직금 정산 확인, 출국 수속을 선제적·단계적으로 대비하는 지혜가 필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