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file 김준영 2001-02-10 01:1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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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사 김준영입니다.

다음글은 한상복(㈜비즈하이 파트너, 전 서울경제신문 기자)가 inews24에 기고한 글입니다. 시사하는 바가 크기에 게시판에 올립니다. 우리의 모습은 어떤 상태일까요? 자신만의 우물속에서 하늘을 쳐다보며 그것이 세상의 전부라고 생각하지는 않는지요? 하지만 현실은 급변하고 있으며 때로는 우리가 변화에 앞장서야 할 것 입니다.

[전 문]
“공돌이 X들하고는 못해 먹겠다. 얘기가 통해야 뭔가를 하지. 나도 얼치기 공돌이 출신이지만, 오리지널들은 완전히 벽창호야. 벽에다 대고 얘기하는 게 낫다니까. 돈만 좀 있으면 차라리 투자업을 하고 싶은데, 어디 물주 좀 없냐?”

얼마 전에 선배를 찾아갔더니, 이 양반이 사무실 구석에서 귓속말로 털어 놓는 험담입니다. “실력있는 석박사 엔지니어를 영입했다”며 자랑하던 게 엇그제인데 그 사이에 일이 심하게 꼬였답니다.

선배는 국내 대학의 재료공학과를 졸업한 뒤 미국에 건너가 MBA를 취득하고 돌아온 독특한 이력의 소유자입니다. 귀국한 뒤에도 대기업과 금융권 언저리를 전전하다가 지난해 ‘엔지니어링 벤처기업’을 세웠습니다.

여기서 `엔지니어링 벤처기업` 이라 함은 본인의 주장입니다. 특정 분야의 신기술을 개발해 상품화시켜 팔아먹겠다는 것이지요. 왜 `본인의 주장` 차원에 머물 수 밖에 없는지는 뒤에 드러납니다.

다른 것은 몰라도 `말발` 하나는 끝내주는 사람입니다. 이 분을 처음 만나 그 `입심`에 도취된 사람들은 사업계획서에 나온 경력을 보고 나서 한결같이 놀란다고 합니다. "엥? 사장님이 공학도 출신입니까?" 백이면 백, 이런 반응이 나온답니다.

이 양반이 회사를 차리고 실력자들을 끌어모은 것도 ‘화려한 언변’ 덕분이 아닌가 합니다. 선배 스스로도 “나야 입만 갖고 사는 사람 아니냐”고 농담을 할 때가 많습니다.

집안 형편이 괜찮은지라 자신의 여유자금 1억원과 부친이 건네준 돈 1억원, 주위에서 모아준 1억5천만원을 가지고 자본금 3억5천만원 짜리 회사 간판을 올릴 수 있었습니다. 함께 창업한 엔지니어들은 한결같이 “돈이 없어 못낸다”길래 나중에 스톡옵션을 주는 것으로 결론이 났다고 합니다.

그런데 기관투자 유치를 추진하던 중 사단이 나고야 말았습니다. 사업계획서를 제출한 기관마다 지분구조를 문제삼는 것이었습니다. 선배도 그 가능성을 염려하고는 있었지만, 이 정도로 심각할 줄은 몰랐다고 합니다.

"기술과 아이디어는 좋습니다만 지분구조가 문젭니다. 기술자들의 지분이 전혀 없는데, 이 사람들이 뛰쳐 나가면 어떻게 할 겁니까? 자본금이 3억5천 밖에 안된다면 최소한 10%는 엔지니어들이 가져야지요."

친절한 몇몇 기관은 지분구조만 조정할 경우 좋은 조건에 투자를 하겠다며 상당히 적극적인 입장을 보였습니다. 아마도 선배의 아이템이 꽤 괜찮은 사업모델인 모양입니다. 요즘처럼 투자받기 어려운 시기에 `한수 지도`까지 해주며 투자를 하겠다는 곳이 있는 것을 보면 말입니다.

선배는 기관들의 우호적인 모양새를 보고 뛸듯이 기뻤다고 합니다. 펀딩만 되면 기술개발은 물론 필드 테스트가 끝날 때까지 한숨을 돌릴 수 있다는 계산이 섰기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투자유치는 여지껏 답보상태입니다. 끄덕도 하지 않는 엔지니어들 때문이었습니다. "지분구조 때문에 펀딩이 힘드니 각자 형편이 닿는대로 자본금을 내달라”고 수차례 이야기했지만 묵묵부답으로 일주일을 넘겼습니다.

초조해진 선배는 회의를 소집, “여윳돈이 없으면 각자 은행돈을 빌려서라도 이 달안에 지분구성을 맞추자”고 강요했다 합니다. 석박사 학위를 딸 만큼 오랫동안 공부한 사람들이 `그깟 천만원도 안되는 돈을 놓고(선배의 표현을 빌리자면)` 서로 눈치를 보는 듯한 분위기여서 화가 치밀었다는 것이지요.

며칠간 냉전이 이어지다가 다시 열린 독촉 회의에서 마침내 한바탕 전쟁이 벌어졌습니다. 엔지니어들은 처음에는 “전세 옮기느라 여유가 없다”는 등의 핑계를 대다가 사장이 “우리 모두의 회사인데 그 정도 투자도 안하겠다는 거냐”고 몰아세우자, 속내를 드러내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엔지니어들의 주장을 요약하자면 이렇습니다.

"우리의 회사라고 하지만, 사실상 사장 당신의 회사 아니냐. 당신이 돈을 댔다면 우리는 기술과 노하우를 냈다. 우리가 없다면 당신이 이런 사업을 할 수 있겠는가. 따라서 기술에 돈까지 내라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우리에게 스톡옵션을 준다고 했는데, 그 약속이나 잘 지켜라. 지분 재조정이 꼭 필요하다면 당신의 지분을 줄여서 우리에게 주면 될 것 아닌가."

서로간의 감정이 격해지다 보니 별의별 얘기가 다 나왔습니다.

"이 회사가 아니라도 우리가 갈 곳은 많다. 돈이 없어서 당신처럼 회사를 만들지는 못해도 대기업 연구소 중에서도 ‘어서옵쇼’ 하는 곳이 부지기수다. 하다 못해 학교로 돌아가 포스트 닥터 과정을 밟을 수도 있다. 우리가 돈을 내기 힘든 결정적인 이유는 당신과 스타일이 다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믿을 수가 없다."

여기서 `스타일` 이라는 부분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몇 달 동안 함께 일을 하면서도 `회사의 양대 축`인 기술과 경영이 다른 생각을 갖고 있다는 것을, 사장만 몰랐던 것이지요.

선배의 꿈은 굴지의 엔지니어링 회사를 만드는 것입니다. 골치 아프게 공장을 돌리면서 여기저기에 `삥`(전문용어를 자주 사용해서 죄송합니다)을 뜯기느니, 차라리 기술을 상품화하는 페이블리스 컴퍼니(fabless company)를 지향하겠다는 속셈이었습니다.

이 양반은 태생적으로 제조업을 싫어하는 사람입니다. 부친께서 건설업을 하다가 뒤늦게 제조업에 뛰어들어 한재산 말아먹기도 했다는 이야기를 곧잘 합니다.

"세계의 웬만한 공장은 죄다 중국으로 몰리게 되어 있다구. 90년대 이후로 세계 어디에서라도 인플레이션이 일어났다는 소식 들어본 적 있냐? 없지? 이젠 디플레이션 시대야. 공산품 값은 시간 단위로 떨어진다구. 가격경쟁력을 따지다 보니 생산원가가 싼 곳을 찾아 굴뚝이 옮겨갈 수 밖에 없는 거야. 미국 회사들을 봐. 본토에서 제조하는 품목이 얼마나 되는지 말야."

하지만 엔지니어들의 생각은 달랐습니다. "우리가 애써 개발한 기술을 왜 남에게 파느냐. 공장을 돌리다가 망해도 우리가 만든 아이템을 손수 제작해야 한다"는 주장이었습니다.

이런 사업관의 차이는 회사 비전 논쟁으로 이어졌습니다. 선배는 "사업이 어느 정도 성공 시점에 이르면 더 높은 도약을 위해 매각을 추진할 수도 있다"고 말했는데 엔지니어들은 이 대목에서 노골적인 적개심을 드러냈습니다.

장시간 논쟁 끝에 화해를 위해 마련된 술자리에서 한 젊은 엔지니어가 술기운을 빌어 선배의 멱살을 잡고 흔들었다고 합니다.

"이 XXX! 너 사기꾼이지. 어떻게 회사를 팔아먹을 생각을 할 수 있어. 우리가 기계 부품이야? 팔면 그대로 넘어갈 줄 알아? 너희들 같은 볼펜(엔지니어들이 화이트컬러를 일컬어 종종 이렇게 말한다고 합니다) 더러워서 내가 이민을 가든지 해야겠어. 나쁜 사기꾼 XX들."

선배는 이 날의 충격 이후로 당분간 엔지니어링 회사의 꿈을 접기로 했습니다. 기술이 개발되면 그 때 가서 다시 생각해 보겠다는 쪽입니다. 엔지니어들이 언제 떠날지 몰라 전전긍긍하면서 말입니다.

선배의 말로는 한바탕 전쟁 이후 서로간의 관계가 많이 부드러워졌다고 하는데, 그것이 휴전 상태인지 평화협정 체결인지는 모르겠습니다. 다만 선배의 푸념은 “엔지니어들이 경영을 몰라도 너무 모른다”는 것이었습니다.

제 시각에서 볼 때 ‘공장을 만들지 않겠다’거나 `나중에 회사를 매각할 수도 있다`는 선배가 사기꾼 같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선배의 주장 가운데 상당 부분은 동감할 정도입니다. 아마도 그 회사의 엔지니어 분들께서 이 글을 본다면 “바깥에 있는 또 다른 사기꾼이 사장을 편들어 준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벤처 붐이 거세게 일어난 뒤로 엔지니어들의 입지가 크게 강화된 것은 바람직한 일입니다. 경영자로서는 자신만의 아이템을 찾아야 하니, 독보적인 기술력과 창의력의 소유자들을 모실 수 밖에요. 또한 ‘기업 발전의 원동력’인 엔지니어들을 그동안 푸대접했던 데 대한 반성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엔지니어들이 좋은 대기업 및 국책연구소, 학교 등의 직장을 등지고 벤처로 자리를 옮긴 것은 아마도 성공을 위해서 였을 겁니다. 젊은 시절의 노력을 투자해 많은 돈을 벌고, 자신의 여유로운 인생을 설계하기 위해서 입니다. 최소한 하루하루의 돈 걱정에서는 자유롭고 싶었을 겁니다.

그렇다면 자신의 투자처인 기업의 가치가 높아져야 합니다. 기업가치가 커질수록 자신의 투자수익이 높아집니다. `기업가치 10억원 - 내 몫 3%`일 때와 `기업가치 100억원 - 내 몫 1%` 일 때 여러분은 어떤 조합을 선택하시겠습니까?

회사의 가치를 높여 여러분을 비롯한 내외부 투자자들에게 높은 이익을 안겨주기 위해서라면 과감하게 기업을 매각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외부의 대자본을 끌어들여 기술개발이나 마케팅 등에서 새로운 지평을 열어가게 됩니다.

물론 ‘기술이 있으니 반드시 내 손으로 공장을 돌리고 남의 손에는 절대로 넘기지 않겠다’는 꿋꿋한(?) 심지의 소유자들을 찾아보기 힘든 세상입니다. 전에도 말씀드렸지만, 이런 생각이라면 차라리 법인 등록을 하지 말고 자영업(개인사업자)을 하는 것이 낫습니다.

코스닥시장에 등록을 하는 것은 `시중의 돈을 빨아들이기 위한 목적`도 있지만, 많은 사람들에게 투자이익의 기회를 제공한다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스스로 걸머지는 것이기도 합니다.

여러분의 생각에도 그 선배가 사기꾼 같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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