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교심리’‘주변인식’도 당신의 돈을 까먹는 주범

글 세이노 선생 (SayNo@korea.com)


강태기씨의 모노 드라마 ‘돈’에는 여러 인물이 등장한다. 마지막 재산 1천원을 털어서 산 복권이 당첨돼 벼락부자가 된 실직자. 그 돈을 탈취한 강도. 그 강도로부터 청혼을 받는 창녀. 강도가 목욕하는 사이에 돈가방을 훔쳐 병에 시달리는 애인에게 달려 간 창녀.

돈 때문에 사랑하는 여자를 사창가에 내몬 죄책감을 견디지 못하여 자살한 애인. 이 연극에서 ‘돈’은 화폐로서의 ‘돈’을 비롯해 ‘돌고 돈다’는 의미와 미친다는 뜻의 ‘돈다’는 의미를 동시에 내포하고 있다.

그러나 돈이 사람을 사이코로 만드는 기능만 갖고 있는 것은 물론 아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이 갖고 있는 첫번째 기능은 의식주를 해결하여 준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돈은 벌어야 한다. 여기서 혹자는 예수가 성경에서 “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걱정하지 말라….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고 한 말을 내게 들려줄지도 모른다.

하지만 예수의 말은 앞날을 생각하는 당연한 걱정을 불필요하다고 하는 말이 아니다. 빈곤은 지나친 근심과 걱정을 가져 오기에 하나님의 의를 자칫 무시하게 될 위험이 있음을 경고하는 것이다. 삶에 필요한 일들을 스스로 감당하고 하나님의 섭리에 맡기게 되면 하나님이 공중의 새와 들의 꽃을 보호하듯 보살펴 주실 것이라는 의미이지 그냥 놀고 있어도 의식주가 저절로 해결된다는 의미가 아니라는 말이다.

불교에서는 어떨까? 부처는 초기 불전인 「선생경(善生經)」에서 자본주의적 가치를 상당히 구체적으로 장려하고 있다. ‘마땅히 먼저 기예를 익히라 그래야만 재물을 얻으리라. 재물을 얻어 이미 구족하거든 마땅히 스스로 지키어 보호하라’고 하기도 하고 ‘밭 갈고, 장사하며, 목장 만들어 짐승 먹이고, 생업에 부지런히 전념하라’고 당부한다.

‘남편은 아내에게 의식주를 걱정하지 않게 하고, 장신구를 사줄 수 있어야 한다’고 까지 말한다. 「잡아함경(雜阿含經)」에서 남편은 아내에게 생활비를 주어야 하고 아내는 재산관리를 잘해야 한다는 의무가 명시된다. 예수와 부처까지 내가 인용하는 이유는 돈 자체를 금기시하지는 말라는 뜻이다.

돈의 두번째 기능은 돈이 있으면 안심이 된다는 사실에 있다. 돈이 있다고 반드시 행복해 지는 것은 아니라고 할지라도 일단 통장에 돈이 넉넉히 있다면 안심이 되고 걱정거리도 웬만큼은 줄일 수 있지 않은가. 병에 걸렸을 때 불치병이 아니라면 돈을 갖고 치료를 받을 수 있다. 실수로 사람을 죽였어도 돈이 있으면 그 가족에게 위자료를 주고 합의서를 받아내서 형량을 적게 받을 수도 있다.

돈의 세번째 기능은 기회를 만들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은행원이었으나 공금 횡령으로 감옥에 있는 도중 소설을 쓰기 시작하였던 오 헨리의 단편 가운데 ‘황금의 신과 사랑의 사수’라는 것이 있다.

돈 많은 아버지를 무척이나 경멸하는 아들은 짝사랑하는 여자에게 아직 말도 한 번 건네보지 못했다. 어느 날 아들은 연극을 구경하기 위해 기차역에 도착하는 그녀를 극장까지 마차로 안내하는 역을 맡는다. 그러나 그 시간은 고작 칠팔분. 그는 돈이면 무엇이든 살 수 있다는 아버지에게 그 사실을 말하고 돈으로 어떻게 사랑을 얻느냐고 푸념한다.

며칠 후 역으로 간 그는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그녀에게 인사하고 마차로 안내한다. 극장을 향해 마차가 달리던 중 아들이 갑자기 당황해 하며 마차를 멈춘다. 어머니의 유품인 반지를 떨어뜨린 것. 그는 마차 밖으로 나가 1분도 안 되어 반지를 찾아 가지고 돌아왔고, 다시 마차는 출발하였다. 그러나 그 1분 사이에 다른 차들이 길을 막아버렸고, 넓은 광장은 수많은 짐마차·승용차·짐차 등으로 인해 온통 아수라장이 되어가고 있었다. 그들이 탄 마차는 꼼짝할 수 없는 처지가 되고 말았다.

결국 두 사람은 자연스럽게 여러 가지 얘기를 하게 되고, 아들은 사랑을 고백하며 여자도 그 사랑을 받아들인다. 다음날 웬 사내가 아버지를 방문하여 돈이 생각보다 더 들어갔다고 보고한다. 그는 아버지의 지시를 받고 아들의 마차가 지나갈 시각에 도시의 모든 탈 것들을 동원하여 길을 막아버려 두 사람이 이야기할 시간을 넉넉하게 만들어 준 사람이었다.

오 헨리가 이 소설에서 말하려고 한 것은, 돈이면 사랑도 만들 수 있다는 생각이었을까? 아닌 것 같다. 돈으로 사랑을 시작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 수는 있지만 반지가 마차에서 굴러 떨어지고 그것을 찾느라고 1분을 소비하는 바람에 타이밍이 맞았듯이 ‘신의 어떤 도움’ 혹은 ‘운’이 따라야 한다.

게다가 아무리 두 남녀가 오래 이야기할 기회를 갖게 되었다고 할지라도 서로가 상대방에 대해 사랑의 씨앗이라고 할 수 있는 필(feel)도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결국 돈이 행복의 첫 단추를 채울 기회를 주는 기능을 갖고 있기는 하지만 나머지 단추들은 모두 다른 요소들이 좌우한다는 말이다.

이러한 사실은 90년부터 99년까지 10년 동안 영국 워릭대 연구팀이 매년 영국인 1만명을 무작위로 추출해 생활수준과 만족도를 분석 발표한 자료에서도 나타난다. 그들은 “가장 행복감을 느끼게 하는 돈의 액수는 1백만 파운드(약 18억원)” 이라고 하였다. 국민 소득을 감안하면 우리 실정으로는 약 9억원 수준이다. 연구팀은 “1백만 파운드의 돈이 있다고 해서 다 행복한 것은 아니고 일에서의 성취감, 만족스런 결혼생활, 건강 등이 행복을 결정하는 데 중요한 요인들” 이라고 결론지었다(이런 뻔한 사실을 알아내는 데 10년씩이나 소비하다니!).

그렇다면 건강·가정·직장에 아무런 문제가 없는 사람들에게 돈이 생기면 행복을 더 느끼게 될까? 잠시 동안만 그렇다. 왜 돈 문제 이외에는 걱정 근심이 없는 사람들에게 조차 돈이 영원한 행복을 안겨다 주지는 못하는 것일까? 그 이유는 인간은 환경이 바뀌면 재빨리 그 새로운 환경을 아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고는 그 이상을 바라기 때문이다. 이른바 ‘당연 심리’이다. 전세를 살던 사람에게 자기 집을 마련하였을 때의 기쁨이 몇 년 못 가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시간이 지나면 더 많은 것을 원하게 된다. 게다가 행복은 상대적인 성격을 갖고 있다. 우리는 독립적인 행복을 원하는 것이 아니라 주변의 다른 사람들보다 더 행복해지기를 원한다. ‘비교 심리’이다. 언제나 우리 눈에는 남들이 더 행복해 보이고, 남들이 더 행복할 것이라고 가정하기 때문에 스스로를 상대적으로 불행하게 여기게 된다. 특히 주변에 세속적 성공을 거둔 사람들이 있게 되면 “주변 사람들이 나를 불행하게 생각할 것”이라는 생각을 하며 우울해 한다. 나는 이것을 ‘주변 인식’이라고 부른다.

‘당연 심리’는 개개인에게 상황을 진보시킬 수 있는 동기가 되기도 한다. 내가 나쁘게 보는 것은 ‘비교 심리’와 ‘주변 인식’이다. 부자가 되지 못하는 사람들 대다수는 ‘비교 심리’가 가져온 소비 때문에 돈을 모으지 못한다. 미국에서 조사한 바에 의하면 당신이 1년에 11만 달러를 벌고, 다른 사람들은 20만 달러를 버는 세계와 당신이 10만 달러를 벌고, 다른 사람들은 8만 달러를 버는 세계, 이 두 세계 중 어떤 것을 선택하겠느냐고 물으면 대다수의 미국인은 두번째 세계를 택한다.
바로 ‘비교 심리’ 때문이다. 예를 들어 이웃집에서 차를 갖고 있으면 나도 차가 있어야 비슷한 행복을 누린다고 믿는다. 그래서 좀 무리를 하더라도 기어이 차를 사고야 만다. 추석이나 여름 휴가 때 중고차 값이 오르는 이유도 사람들에게 ‘비교 심리’가 있기 때문이다. 남들 다 자가용 타고 가는데 우리도 그래야 되지 않느냐는 것이다. 게다가 나에게 차가 없으면 남들이 나를 불행하다고 볼까 봐 두려워 한다. ‘주변 인식’이다. 마치 남들에게 보이기 위해 사는 사람들 같다.

물론 이러한 심리들은 상대적 박탈감을 두려워하기 때문에 나온 심리적 방어기제라고 볼 수도 있다. 또 자기가 현재 이 사회에서 잘 해 나가고 있는지를 평가할 수 있는 방안으로써 주변 사람들과 자신을 비교하는 심리적 방안으로 볼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런 심리들의 내면 깊은 곳에 자리잡고 있는 것은 시기심이다. 남들이 가진 것들을 자기도 갖고자 하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돈이 모일 겨를이 없다.

진정한 부자들은 이 세 가지 심리들을 극복한 사람들이다. 그들이 부자가 되는 과정을 살펴보라. 그들은 남들과 비교하며 살지 않았다. 남들이 무엇을 갖고 있든 간에 관심이 없었다.

그들은 남들 흉내를 내지 않고 우선 돈을 모았다. 돈이 쌓이면 그 돈에서 나오는 수익으로 ‘나중에’ 무엇이든 살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원금을 건드리지 않고서 말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위 세 가지 심리 때문에 그 원금이 될 작은 돈들을 ‘먼저’ 야금야금 갉아 먹는다. 수입이 조금만 늘어도 쓰고 싶어 안달이 나며 빚까지 진다.

그래서 나는 말한다. 부자가 되고 싶다면 스스로의 삶에 대한 자세부터 바로 세우라고 말이다. 자기 삶을 독립적으로 통제하지 못하고 남들 소비하는 모습을 흉내내기 바쁜 사람이 어떻게 돈의 주인이 될 수 있단 말인가.

프란시스 후쿠야마는 「역사의 종말」에서 이제 역사는 자본주의적 시장경제를 끝으로 더 이상 진보할 수 없는 완성된 상태에 도달했다고 까지 했다. 명심해라. 시장경제에 대한 대안이 없는 상황에서 당신이 돈을 어떻게 사용하고 어떻게 모으는가 하는 것은 당신이 얼마나 신중하게 자기 삶을 꾸려 나가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잣대가 된다는 사실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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