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file Blitz 2003-01-27 20: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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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이 글 전에 최근 감명 깊은 양심수 저자 분들의
황 대권님의 "야생초 편지"
그리고 전 우익님의 "혼자만 잘 살믄 무슨 재민겨"
저서를 읽고
암울했던 세월이 생각납니다.
이제 새로운 천년을 지나가면서
자유(紫楡)냐 평등(平等)이냐 박애(博愛)냐를 따지기 보다
포용(包容)과 화합(和合)과 조화(調和)가 필요하다고 느낍니다.

사람을 생긴 그대로 사랑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를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보기가
얼마나 어려운지를
이제야 조금 알겠다.
평화는 상대방이 내 뜻대로 되어지길
바라는 마음을 그만 둘 때이며
행복은 그러한 마음이 위로 받을 때이며
기쁨은 비워진 두 마음이 부딪힐 때이다.
(황대권 "야생초 편지"중에서)


몇 년 전(97년인가?)구미에 세미나가 있어서 갔는데
세미나를 마치고 시간이 남아 구미 상모동에 있는 박정희 대통령의
생가가 기억에 남아 차를 몰고 물어 물어 방문했다.
들어가는 골목길에는 가을의 찬바람에 과자봉지가 날라 다니고 있고
쓰레기가 이곳 저곳에 널려 있으며
아무런 안내판도 없고 시골의 일반 가정집이었다.
입구에는 조그만 내력을 적은 게시판만 있었다.
집에 들어서니 박대통령의 생가를 복원한 조그만 초가집이 있고
방안에는 공부하던 책상 하나만 덩그러니 놓여져 있었다.
초가집 옆에는 기념관으로 지어진 슬라브집으로서
벽에는 금이 가고 페인트는 퇴색되어 우중충하고
들어서니 정면에는 박대통령과 육여사의 낡디 낡은 영정이 걸려
있고 빗물이 샌 흔적 외에 별다른 장식품은 없었다.

나의 중 고교 대학초년 시절 그리 욕하던 파쇼, 독재자,
친일파 다카키 마사오(高木正雄)로 수식되던 대통령이지만
영정 앞에는 저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향을 피우고 절을 하고 나니 눈앞이 부옅게 흐려진다.
그래도 일국의 대통령인데 이렇게 낡은 건물에 영정을 모셔두다니
박통, 박통이라고 욕해도 좋다.
그러나 살아 생전 조국의 발전을 위해 노심초사한 것은 사실이 아니었나?
이후의 대통령 중에 국가 발전을 위해서
어느 대통령이 그렇게 철저한 계획을 세우고 체크하고 실천하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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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itz 곽중희 배상
包容
和合
調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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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도..박대통령도.. 간호사 광부들 모두가 울었다.

5.16혁명 뒤 미국은 혁명세력들을 인정하지 않았다.
만약 그들을 인정한다면 아시아 또는 다른 나라에도 똑같은 상황이 발생할 것이라는 생각에서였다. 그리고 원조도 중단했다.
당시 미국 대통령은 존 에프 케네디 대통령..

박정희 소장은 케네디를 만나기 위해 화이트 하우스까지 갔었지만 끝네 케네디는 박정희를 만나주지 않았다.
호텔에서 박정희 소장과 수행원들은 서러워서 한없는 눈물을 흘렸다.
가난한 한국에 돈 빌려줄 나라는 어디에도 없었다.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마음에 우리와 같이 분단되어 있는 서독에 손을 벌리기 위해 대사를 파견해서 미국의 방해에도 불구하고 1억 4000만 마르크를 빌리는데 성공했다.

서독에 간호사 광부가 필요해서 그들을 보내주고 그들의 봉급을 담보로 잡았다.

고졸 출신 광부 5000명을 모집하는데 4만 6천 여명이 몰렸다. 그들 중에 학사출신자들도 수두룩 했다. 면접볼 때 손이 고와서 떨어질까 싶어 연탄에 손을 비비며 거친 손 만들어 면접을 봤다.
서독항공사가 그들을 태우기 위해 온 공항에는 간호사 광부들의 가족 친인척들이 나라가 가난해 이역만리로 돈 벌로 가는 가족을 언제 다시 볼 수 있을까 싶어 공항은 눈물 바다가 되었다.

서독에 도착한 간호사들은 시골병원에 뿔뿔히 흩어졌다.
말도 통하지 않는 간호사들에게 처음 시킨일은 시체닦는 일이었다.
어린간호사들은 어머니~! 어머니~~! 하며 울면서 거즈에 알코를 뭏혀가며 시체를 닦았다.
하루에 또 닦고 또 닦았다.

광부들은 1000미터이상의 아래에서 그 뜨거운 지열을 받으며 열심히 일했다. 하루 8시간 일하는 서독사람들에 비해 열 몇시간을 그 깊은 지하에서 광부일을 했다.

서독방송 신문들은 대단한 민족이라며 저 가난한 한국에서 온 간호사 광부들에게 찬사를 보냈다.
세상에..어떻게 저렇게 일하나 싶어,,그들의 별명을 코리안엔젤이라고 붙여 주었다.

몇년 뒤 서독 뤼부케 대통령의 초대로 박대통령은 서독을 방문하게 되었다. 단군이래 한국의 대통령이 외국에 나가기는 처음이었다.
미국 노스트웨스트 항공사와 계약까지 했지만 미국정부는 쿠데타정부에게 비행기를 빌려줄 수 없다는 생각에 계약을 취소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서독에서 친절하게도 항공기를 보내주었다.

서독에 도착한 박대통령 일행은 거리에 시민들이 플래카드를 들고 뜨겁게 환영해 주었다. 코리안 간호사 만세~! 코리안 광부 만세~! 코리안 엔젤 만세~!
영어를 할 줄 모르는 박대통령은 창밖을 보며 감격에 겨워 땡규~! 땡큐~! 만을 반복해서 외쳤다.


서독에 도착한 박대통령은 일행은 뤼부케 대통령과 광부들을 위로 격려하기 위해 갔다. 고국의 대통령이 온다는 사실에 그들은 기뻐하며 500여명이 들어갈 수 있는 대통령이 연설하기로 되어 있는 곳에 갔다.
박대통령과 뤼부케 대통령 수행원들이 강당에 들어갔을때 양복을 입은 광부들의 얼굴이 새까맣게 그을려 있었다.
연설에 앞서 애국가가 나왔을때 목이 메어 애국가를 제대로 부를 수 없을 정도로 울음바다가 되었다.

대통령이 연설을 했다. 단지 나라가 가난해 이역만리에 와서 1000미터도 더 되는 곳에서 얼굴이 시커멓게 그을려 있는 광부들을 앞에 놓고 있으니 목이 메여서 말이 잘 나오지 않았다.

"우리 열심히 일합시다! 후손들을 위해서 열심히 일합시다.열심히 합시다" 눈물에 잠긴 목소리로 박대통령은 계속 이말을 반복했다. 단지 나라가 가난하다는 이유만으로 이역만리 수천미터 아래서 고생하는 광부들과 시체를 닦으며 일하는 어린 간호사들..고국의 배곰고 있는 국민들 생각이 나서 더이상 참지 못해 그는 눈물을 터뜨렸다.

대통령이라는 신분도 잊은 채 눈물을 터뜨리자 광부들도 울면서 육여사 앞으로 몰려가 어머니~! 어머니~! 하며 육여사의 옷을 잡고 울었다. 옷이 찢으질 정도로 잡고 늘어졌다. 육여사는 울면서 자식같이 한명 한명 껴안았다. 광부들은 뤼부케 대통령 앞에 큰절을 하며 울면서.. "고맙습니다..고맙습니다..한국을 도와주세요..열심히 일하겠습니다..무슨일이든지 하겠습니다."를 반복했다. 뤼부케 대통령도 울었다.

연설이 끝나고 강당에서 나오자 미쳐 강당에 들어가지 못한 광부들이 떠나는 박대통령과 육여사를 붙잡고.."어디 가세요~!.. 우릴 두고 어디가세요..고향에 가고 싶어요..부모님이 보고 싶어요..하며 떠나는 박대통령과 육여사를 놓아 줄 지 몰랐다.

차에 올라 탄 박대통령은 계속 눈물을 흘렸다. 옆에 앉은 뤼부케 대통령은 손수건을 직접 주며.. `우리가 도와 주겠습니다. 서독이 도와 주겠습니다."라고 했다.

서독국회에서 연설하는 자리에서 박대통령은.." 돈 좀 빌려주세요..한국에 돈 좀 빌려주세요..공산주의자들과 대결하려면 경제를 일으켜야 합니다. 돈 꼭 갚겠습니다. 우리 군인들은 거짓말 하지 않습니다. 돈 좀 빌려주세요."를 반복해서 말했다.

당시 한국은 자원도 돈도 없는 세계에서 가장 못사는 나라였다. 당시 유엔에 등록된 나라수는 120여개국.. 필리핀 국민소독 170여불, 태국 220여불 등..

한국은 76불이었다. 우리 밑에 인도만이 있었다.
120여개국 나라중에 인도다음으로 못사는 나라였다. 1964년 국민소득 100달러.. 100달러를 위해 4600년이 걸렸다.

우리는 머리카락을 짤라다 외국에 팔았다. 동네마다 엿장수를 동원하며 머리카락 파세요~ 하며 머리카락을 모았다. 시골에 나이드신 분들은 서울구경 가기 위해 머리카락을 짤랐고.. 쌀사기 위해 머리카락을 잘랐고..

그래서 한국의 가발산업이 발전하게 되었던 것이다.
또한 플라스틱으로 만든 꽃을 만들어 외국에 팔았다.
인형을 만들어 외국에 팔았다. 전국에 쥐잡기 운동을 벌였다. 쥐털로 일명 코리안 밍크를 만들어 팔았다.

이렇게 저렇게 해서 1965년 수출 1억 달러를 달성했다.
1977년은 수출 100억 달러 국민소득 1000달러를 달성했다.
세계가 놀랐다. "저 거지들이 1000달러를 해?" 하며.. 세계가 한국을 경이적인 눈빛으로 바라 봤다.

조국 근대화의 점화는 서독에 파견 된 간호사들과 광부들이었다.
박대통령이 왜 그토록 경제발전에 집착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이다.
그는 큰 아버지였다고 생각한다. 적어도 지금 우리세대 더 나아가 앞으로 태어날 후손들을 생각할 줄 아는 책임감 있는 큰 아버지였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올림픽을 개최하고 월드컵을 개최하고 세계가 이만큼이라도 한국을 무시하지 못하는 상황을 만든 이유는 박대통령과 당시 세대들이 힘을 합쳐 시체를 닦으며..수천미터 지하에서..월남에서 피를 흘리며.. 저 중동 열사에서..일하고 또 일한 세대들의 고마움을 우리 후손들은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당시 한국의 입장에서 돼지목에 진주목걸이인 민주주의란 이름으로 허구한날 반대만 일삼고 자유대한민국의 전복을 획책하는 무리들과 싸우며 일했다.

일에는 순서가 있는 법 민주주의도 경제력이 뒷받침 되었을때 꽃을 핀다.
자.. 그토록 외쳤던 민주주의를 펼쳐보라!
이제 이것은 우리세대들의 몫이 되었다 --퍼온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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