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접 진행각과 방사선검사 불량
1996년도 늦가을 노란 은행잎이 떨어지던 어느 날 강의를 마치고 막 연구실에 들어오는데, 전화벨 소리가 울렸다. 졸업생이 취업해 있는 회사의 기술담당 부사장이었다. 그 회사에 대해서는 오래 전에 용접 현장 작업자들이 수동피복아크용접만을 고집하던 것을 현장 기술지도와 장단점의 비교를 위한 강의, 그리고 작업반장들의 설득 등을 통하여 반자동 탄산가스아크용접으로의 전환을 조기에 성공하였던 경험이 있었다. 그 덕분에 아끼는 졸업생을 취업도 시키고 조기 승진의 기회도 주어진 것으로 듣고 있었다. 그래서 상당히 반가운 마음으로 부사장님의 목소리에 대응할 수 있었다. 그런데, 저쪽의 목소리는 매우 다급함이 섞여있었다.
"교수님, 큰 일 났습니다. 우리 회사가 지금 용접 불량 때문에 마비 상태에 있습니다. 아니 글쎄, 일본의 M중공업에서 집채만한 구조물 다섯 셋트를 주문 받아서 설계도면대로 절단과 용접, 방사선 검사, 그리고 절삭가공, 드릴링 등을 해서 납품하게 되어있는데, 방사선 검사에서 계속 불합격이 나와서 뒤쪽 기계가공 파트 사람들이 손을 놓고 기다리고 있다가 급기야는 오늘 아침부터 휴가까지 보내버렸습니다."
"아니, 갑자기 그러시니까 저까지 정신을 못 차리겠습니다. 지금, 무슨 용접을 하고 계시는지 자초지종을 차분히 좀 말씀해주십시오. "
"철판 두께 40t에, 플럭스코어드 와이어로 탄산가스(CO2)아크용접 합니다. 1호기 용접 때에 방사선 불량이 나와서 애를 무지하게 먹어서, 2호기 때는 아예 단단히 자체 교육도 시키고, 공장문도 차단하여 바람 관리도 정말 철저히 했는데, 또 똑같은 방사선 불량이 나와서 어제까지 감리와 옥신각신하다가 밤새 다 파내놓고 지금 전화드리는 판입니다. 제발 좀 해결해 주십시오! 이건 교수님께 부탁드릴 수밖에 없습니다."
다음날 오전에 그 회사에 도착하여 바로 공장 건물로 들어가 보니 과연 회사는 공장 전체가 썰렁하니 분위기가 이상했다. 공장전체를 대충 훑어보고 용접구조물을 보면서 부사장님에게 물었다.
"저렇게 큰 것을 한국에 주문해서 운송비 부담까지 생산 경비에 포함시킬텐데 생산 단가를 시시하게 맞출 수도 없고, 품질도 확실하게 해야 할텐데 정말 장난이 아니겠는데요."
"그래도 우리 회사는 바다와 가까이 있으니까 운송경비는 좀 덜 들어가는데, 품질 맞추는 것이 힘들어서 못 해먹겠습니다."
"아니, 부사장님 생산비용과 품질비용을 달리 생각할 수 있겠습니까? 제가 유학할 때 지도교수와 현장에 나가면 항상 하는 말이 `품질불량이 나면 그 부분은 3배의 추가경비가 들어간다` 고 했는데, 제가 보기에는 4배이상 추가경비가 들어갈 것 같아요. 구체적으로 추가경비를 보면, 그 첫째는 불량난 것 때문에 공사중단하고 여럿이 모여서 법석을 피우는 것이요(모인 사람 숫자와 법석피우는 시간을 곱한 값), 그 둘째는 결함제거에 요구되는 시간과 재료소모이며, 그 셋째는 새로 용접하는 시간과 재료소모이고, 그 넷째는 용접후 다시 비파괴 검사하여 합격판정 받는데 걸리는 시간과 경비라고 할 수 있잖아요."
"교수님이 그렇게 품질불량 경비를 따로 분석해서 말씀하시니까 이해가 됩니다만, 저희들이야 용접 불량내지 말라고만 강조해왔지 비용과 연결시켜서 직원들을 설득하지는 못했는데, 또 다른 차원에서 설득해 볼 필요가 있겠군요."
"그건 그렇고, 부사장님, 도면을 보면서 다시 한번 용접부 상세를 검토해봅시다."
사무동으로 들어와서 도면을 보면서 품질관리 담당자의 상세한 설명을 들었다.
두께40mm의 판을 L그루브(Single bevel groove)로 완전용입 용접하여 모서리 이음부(Corner joint)를 만들도록 한 것이었고(그림1 참조), 다층용접을 해야 하기 때문에 층간온도 관리, 슬래그 제거와 융합불량 방지를 위한 관리 기술이 요구되는 경우였다.
이 L그루브 용접부는 그 유명한 1995년 1월, 일본의 고베 대지진 때에 철골로 된 고층빌딩의 기둥은 그냥 버티고 있었는데, 각 층의 바닥만이 그대로 무너지면서 나무판 겹치듯이 쌓인 것을 조사한 결과, 기둥과 바닥의 보 사이에 그림1과 같이 L그루브로 완전용입 용접을 해야 하는데 부실공사를 해서 부분용입 용접을 했던 사실이 밝혀져서 큰 화제가 되었던 바로 그 용접부와 같은 것이다.
한편, 용접 현장의 관리 부실을 점검하기 위하여 죄인 취조하는 듯한 어투를 억지로 피하면서 하나씩 물어 보았지만, 그런 흔적은 없었고, 대답도 단호하였다. 특히 2호기는 1호기 용접 때 고생한 것 때문에 철저히 관리를 했건만, 야속하게도 또다시 발생한 불량이라는 것을 고려할 때, 당장 그 자리에서 시원하게 `이것이로구나` 하는 해답을 낼 수가 없었다.
갑자기 마음이 답답해졌다. 사장님과 부사장님 외에 4-5명의 기술자들이 일제히 쳐다보고 있는데, 시원한 처방이 나오지 않았다. 빨리 달려오라고 하길래, 막상 헐레벌떡 와서 현장도 도면도 모두 대강 훑어 보기는 했는데, 그리고 불량날 수 있는 관리상의 부실을 모두 물어보았거늘, 아무런 하자가 없었다. 스스로에게 다짐했다. `호랑이에게 물려가도 정신만 차리면.....`, 하고 정신을 가다듬었다.
"현재로서는 해답을 못 내겠습니다. 현장에 가서 처음부터 어떻게 용접을 시작해서 관리 포인트를 구체적으로 어디에 두고 했는지를 하나씩 점검합시다. 말로 하는 설명만으로는 곤란한 단계인 것 같습니다"
현장으로 가면서도 `냉정하게 침착성을 유지하자` 라고 계속 다짐을 했다. 나까지 흥분해서 들떠버리면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작업장에서 용접기의 상태부터 확인에 들어갔다. 전류와 전압 조정은 정상적으로 하였는가, 출력은 안정적인가, 아크 개시 특성은 좋은가, 가스압력과 유량 및 와이어의 송급 특성은 우수한가 등등 장치상의 문제점을 하나씩 확인하였지만 아무런 이상이 없었다. 바람을 막기 위해서는 아예 공장 출입문을 완전히 폐쇄하고 용접하였다고 한다. 다음은 작업시의 문제점을 점검하기 위하여 한 층 용접 후에 다음 층 용접할 때의 비드 표면상태를 확인하고, 작업자와 직접 대면하여 점검하였다.
"작업시 토치를 당기면서 용접했나요, 밀면서 했나요?"
"그야 이렇게 45도로 세워서 밀면서 했지요(그림2참조)"
"잠깐! 지금 45도라고 했나요?, 오른손으로 그렇게 잡고 45도로 눕혀서 밀면서 용접하셨다는 겁니까?"
"예, 제가 전에 우리 반장님에게 배울 때 밀 때나 당길 때나 45도로 눕혀서 용접하면 된다고 배웠는데요. 그게 뭐가 잘못 되었나요? 수평필릿 용접할 때도 모서리에서 45도로 눕혀서 하는 거잖아요(그림3참조)"
"예, 맞습니다. 수평필릿 용접때는 작업각을 45도로 하면 되지만, 맞대기 용접의 아래보기 자세에서 진행각을 45도나 주면 당연히 불량이 나지요. 바로 그 각도 45도라고 하는 것 때문에 지금까지 그 많은 고생을 하신 겁니다."
모두가 어안이 벙벙한 것 같았다. 설마 이런 사소한 것 때문에 불량이 났을 리가 없는데, 저 양반 책만 보고 적당히 말하는 것 아닌가 하고 의심하는 눈치가 역력했다.
"우리 연구실에서 학생들 학부 졸업논문 쓸 때, 진행각에 대한 실험을 직접 해 봤는데, 토치를 밀때(전진법)는 진행각이 30도를 넘어서면 스패터가 심해지고 아크가 불안정해지면서 수시로 아크가 꺼지게 되고, 용입도 현저하게 얕아져서 융합불량이 생기게 됩디다. 아크 모니터링까지 해서 파형까지 직접 확인하였는데요. 그러니 지금 말씀하신 데로 진행각 45도의 전진법으로 용접하였다면, 당연히 융합불량이 곳곳에 나타나게 될 것 같은데요. 확실합니다. 바로 그겁니다."
그리하여 진행각을 15도로 유지한 채 작업이 다시 개시되었고, 두 번 다시 불량이란 소리는 나오지 않았다. 그것까지는 좋았는데, 그 뒤에 졸업생으로부터 연락이 왔는데 그 회사 사장님이 하시는 말씀이,
"이봐 자네는 그 교수 밑에서 몇 년씩이나 용접공부를 했다면서 어째 그런 간단한 것 하나 몰라서 온통 난리를 치게 하는가?"
라고 하더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 졸업생은 기분이 무척 상했는지 투덜대는 것이었다.
"저에게도 부실한 점은 있었지만, 이제 막 대학 졸업한 사람과 15년이상 연구하신 교수님을 직접 비교하니까 저로서는 어떻게 해야 할지 중심을 못잡겠습니다."
용접 전문가와 용접 기술자의 차이는 과연 무엇인가? 일반적으로 맞대기 용접 작업시에는 작업각은 90도로 하면서 진행각은 전진법과 후진법 모두20-30도를 초과하지 않도록 주의하고 있다. 이 진행각의 제한 자체를 알고 있어야 하는 것은 일반 기술자의 수준이겠지만, 진행각이 너무 클 때, 어떤 현상이 생기는 지를 구체적으로 알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즉 용접 작업시 준수해야할 수칙이나 관리지침의 배경으로 되는 이론적 지식이나 보다 깊은 전문 지식까지 모두 알고 있다면 전문가의 수준으로 인정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전문가 수준의 지식도 알고 나면 별 것 아닌 경우가 많고, 흔히 이것을 `콜롬버스 달걀 새우기`라고 하던가?
만약 현장의 반장을 비롯한 모든 작업자가 진행각을 45도로 작업할 때 대학 나온 풋내기 기술자가 30도를 초과하지 않도록 주의를 준들 쉽게 말을 들을 것인가 하는 것도 의문스럽다. 이 때 아크 불안정과 과대한 스패터 및 융합불량의 이유를 들어서 현장 작업자들을 설득할 수 있는 것은 이미 전문가 수준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결국, 그 졸업생은 그 회사를 그만두고 다른 회사로 옮기게 되었다.
경영자나 고급 관리자의 입장에서는 어느 정도의 기술이 초보자 수준이고, 전문가 수준은 어느 정도인지를 꿰뚫어 볼 수 있는 지혜와 혜안이 필요하다. 특히 오늘날과 같이 노동집약적 산업에서 탈피하여 지식 집약적 산업으로 접어든 상황, 즉 모든 기업이 지식경영을 해야만 번창할 수 있는 상황에서는 더욱더 지식의 가치인정과 지식을 가진 사람에 대한 가치인정이 중요한 시대가 된 것이다.
사내의 기술 관리자들이 전문 지식을 습득하도록 세심하게 배려하고, 현장의 전문 지식을 창출할 수 있는 세분화 된 조직과 그 지식을 공유하고 적용할 수 있는 조직을 갖추어야 되고, 필요하면 항상 외부의 전문 지식을 도입하는 경영 기법이 요구되는 것이다.
그야 말로 용접분야에서도 지식경영을 해야만 그 부가가치를 높일 수가 있을 것이다. 작업환경이 다소 험하더라도 그 생산성과 품질을 세계 최고의 수준으로 향상시키면, 분명히 부가가치는 높아질 것이며, 부가가치가 높으면 작업환경을 확실하게 개선하여 사람만은 깨끗한 환경에서 근무할 수가 있을 것이다.
끝으로 용접분야가 세계 속에서 번창하기 위해서는 중소기업이라 하더라도 하루 빨리 지식경영을 할 수 있는 체계를 갖추어야 하겠고, 세계 최고의 생산성과 품질은 결코 단순한 기능과 육체적 노력만에 의해서는 얻어지지 않고, 현장의 많은 경험적 지식과 이론적 전문 지식이 합쳐져야만 얻어질 수 있음을 간절히 강조하고 싶다.
교수님의 글 너무 잘 읽었습니다...
학부에서 용접이란거 배우면서(물론 학부생이라 세부적인 학습은 아니었지만) 전혀 느끼지 못한 물론 직장에서도 알지못한 것이라....잘 읽었습니다..
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