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file 김윤길 2001-10-20 12:2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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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글은 인터넷 신문 오마이뉴스(www.ohmynews.com)에 제공된 글입니다
(http://www.ohmynews.com) 사이트에서 기사검색 에서 비파괴를 치시면 관련 글을 볼수 있습니다.



<체험>북한에서 비파괴검사 생활.....(1)

부제 : 북한에 들어가다




(이 글은 2000년 5월30일~6월19일까지 20일 동안 북한에서 경수로건설 사업중 비파괴검사업무를 수행하면서 체험한 것을 회상하면서 적은 글입니다.)

나는 북한 경수로건설 관련하여 북한에 20일 가량 비파괴 검사를 수행하며 머물러 있었다.

경수로 사업이란 한. 미. 일 3국이 공동으로 설립한 한반도 에너지개발기구(KEDO)를 통해 북한에 경수로 원자력발전소를 유상으로 공급하는 사업이다. 북한의 금호지구에 건설되는 이 발전소는 울진 3.4호기를 참조발전소로 하는 한국표준형 원전이다. 이 사업의 주계약자는 한전이며, 그 외에도 여러 관련업체가 참여하여 함께 시공하는 사업이다.

KEDO는 1000MWe 용량의 가압 경수로발전소 2기 건설과 관련시설, 숙소, 부지내 도로, 바지선 물양장 등을 건설하는 사업을 하고 있다.

나는 이 공사와 관련해서 유류탱크의 비파괴검사 담당으로 선정돼 북한에 갈 기회를 갖게 됐다. 그리고 2000년 5월30일부터 20일간 북한 금호지구에서 비파괴검사를 수행했다.

금호지구란 북한의 함경남도 신포시의 14개 동과 15개 리 중 함경남도 직속의 특별행정기구인 금호리에 있는 지구다. 인근에 양화강을 끼고 있는 해변지역이며 큰 하천으로는 담대천이 흐르고 있다. 과거 북한이 소련의 도움을 받아 원전건설을 추진하다 중단된 곳이기도 하다.

북한에 가게 되어 모든 서류구비 절차를 마친 후 통일부 교육을 받고 5월29일 저녁 부산에서 서울로 가는 밤기차에 몸을 실었다. 서울로 향하여 김포공항 국제선 청사에 집합했다.

바쁜 업무로 인해 국내선 비행기는 많이 이용해 보았지만 국제선 청사에 온 것은 처음이어서 인지 왠지 자꾸 움츠려 드는 기분을 감출 수가 없었다. 이게 바로 촌놈이란 티인가 보다.

그날 북한에 들어가는 인원은 한전 사람과 KEDO직원, 현대건설 등 30명 정도였다.

오전 11시 대한한공편으로 중국 북경공항으로 떠나는 비행기에 탑승하여 내 인생 처음으로 한국을 벗어나 외국으로 떠나게 되었다. 이 비행기 안에는 중국으로 떠나는 우리 나라 사람이 대부분으로 좌석을 메웠다.

드디어 비행기가 활주로를 가로질러 이룩하면서 서울의 빌딩들이 성냥갑만 해지면서 아른거리며 물?좋은 서울을 떠나가고 있었다. 이때 내 마음은 불안과 흥분이 교차하면서 더욱 현기증을 느꼈다. 이렇게 김포공항을 떠나 그 광활한 대지를 스쳐서 3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오후 1시쯤 중국 북경 공항에 도착했다.

아 처음 와본 이국땅. 북경!
나는 중국이 사회주의 국가로서 굉장히 낙후되고 낡은 곳인 줄 알았다. 그러나 그것은 분명한 나의 무지에서 오는 우물 안의 개구리 생각이었다. 김포공항보다 훨씬 큰 건물에 신축한 지 얼마안된 초현대식 공항으로 깨끗하고 세련됐다.

북경 대합실에 2시간 정도 머무르면서 서울의 한복판에 있는 듯한 착각을 했다. 왜냐하면 공항내 매점에서 우리 나라의 신라면과 쵸코파이등이 많이 눈에 띄었기 때문이다.

북경공항에서 북한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북한 비행기로 바꿔 타야 했다. 이제까지 경수로 공사로 북한으로 가는 길은 이 곳에서 평양 순안공항 가서 평양 고려호텔에서 1박을 하고 다음날 평양에서 쌍발기 비행기로 함경남도 함흥 선덕공항으로 와서 이곳에서 차로 금호지구로 들어가는 길이 보편이었다.

그러나 우리 일행은 북경 공항에서 북한 고려항공의 전세기로 바로 함경남도 함흥의 선덕 공항으로 이동하였다. 비행시간은 딱 1시간 소요 됐다.

북경에서 북한 안내원의 지시에 따라 드디어 고려항공의 북한 비행기에 탑승했다. 이 비행기의 크기는 서울- 부산간을 운항하는 아시아나 항공의 작은 비행기보다 조금 더 작은 40석 규모였다.

비행기에 탑승하는 순간 나는 입이 다물어 졌다. 그리고 그 찰라에 과연 이 비행기가 뜰 수 있을까 하는 걱정과 더불어 비행기가 맞는가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그 정도로 낡고 오래된 비행기였다. 모르긴 해도 한 20년은 더 된 것 같았다. 꼭 나 어렸을 적에 시골에서 타던 완행버스에 탄 기분이었다.

이런 불안한 기분을 뒤로 한 채 비행기는 이륙을 하여 목적지 선덕공항을 향해 가고 있었으며 때로는 기류의 변화에 심하게 흔들리는 바람에 바이킹을 타는 듯이 머리카락이 삐죽삐죽 서는 느낌이었다. 이것은 단지 나만이 느끼는 공포가 아니었다.

나는 그런 와중에도 비행기 차창 밖으로 북녘의 산하를 놓치지 않았다. 위에서 바라보니 산마다 나무가 거의 없이 황토색의 황폐한 산이 그대로 땅을 드러 내놓고 있었다.

드디어 함경남도 함흥의 선덕공항에 도착했다. 이 공항은 군사 공항으로 6.25때 썼던 쌍발 엔진의 낡은 비행기가 거의 고철이 되어 약 50여대가 정돈되어 있었으며 정말 한적한 시골 공항이었다.

여기서 입국수속을 마치고 북한에서 제공한 24인승 버스 3대에 나눠타고 120Km 떨어진 경수로 사업 부지인 금호지구로 비포장 도로로 4시간을 달려야만 최종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었다.

버스에서 이동하면서 북한의 구석구석을 가감없이 있는 그대로를 느낄 수 있었다. 북한의 정해진 코스에 따라 금강산 관광이나 평양을 방문하는 그런 한정된 관광이 아니라 북한의 실상을 적나라하게 볼 수 있는 것이다.

버스에서 바라본 북한의 모습. 그것은 내가 상상하고 있던 것과는 너무나도 차이가 났다. 나는 시골에서 태어나서 그런지 정말 내가 8~9살 그때 살았던 그 풍경과 생활 수준이 21세기에 지금 내 눈에 보여지고 있는 것이 남과 북의 경제적인 삶의 수준 차이가 20~30년 격차가 나는 것 같았다.

이때가 5월말이라 한참 모내기를 하는 시기여서 소로 쟁기질하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었으며 논갈고 밭가는 북한의 농부들이 너무나 말라 있었다. 같은 동포로서 눈물이 나오려고 하는 애처로움에 가슴이 뭉클 하였다.

먹고사는 문제에 직면하여 굶주림에 허덕이는 저 북한 농부에게 전쟁할 수 있는 기세란 어느 곳에서도 찾아 볼 수 없었다.

그러고 보면 북한에 대한 김대통령의 `햇볕정책`은 참으로 같은 민족을 위해 다행스러운 정책인 것 같다. 우리 민족의 하나됨을 반대하고 역사를 거스르는 현재 우리 나라 국회에서 일어난 해임안 문제 등. 무조건 당리당략과 흠집내기에만 혈안이 되어있는, 민족의 장래에는 관심도 없는 그런 국회의원들을 보고있자니 끓어오르는 분노와 구역질이 나서 더 이상 글을 쓸 수가 없다.

마음의 안정을 &#52287;은후 북한에서 실제 경험하며 비파괴 검사를 수행한 소감을 다시 올리고자 합니다.


2001/09/07 오후 5:57: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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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자[senior] 2018-09-21 07:00

아주 오래전의 글인데, 최근의 남북 상황을 보면서 그 시절의 기억이 새롭네요. 김윤길 사장님의 건투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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