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file 김윤길 2001-10-20 12:2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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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글은 인터넷 신문 오마이뉴스(www.ohmynews.com)에 제공된 글입니다
(http://www.ohmynews.com) 사이트에서 기사검색 에서 비파괴를 치시면 관련 글을 볼수 있습니다.



<체험>북한에서 비파괴검사 생활 (2)

부제 : 북한에 들어가다


3대의 소형 버스에 나눠탄 우리 일행은 선덕공항에서 오후 6시쯤에야 금호 지구로 출발하였다. 금호 지구까지 거리는 120Km 떨어진 곳인데 4시간이 소요되었다.

나는 버스에서 차창 밖으로 스쳐 지나가는 북한의 현실을 아주 가까이에서 느끼면서 볼 수 있었으며 허탈한 감탄사를 연발 할 수밖에 없었다. 내가 지금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의 여행을 하고 있는 것 같아서 이다. 120Km의 구간은 내가 사는 곳에선 1시간 30분이면 족히 갈 수 있는 시간이었으나 이곳 도로 사정으로선 4시간도 아주 빠듯한 시간이듯 보였다.

농로같은 비포장 도로를 황색 먼지를 가르면서 달리는 3대의 버스는 북한 시골 주민들의 눈을 잡아 두는 풍경이 내가 어려서 처음으로 기차를 보는 그 표정과 흡사한 것 같았다.

그래도 우리에게 다행인 것은 이 낡은 차가 에어컨이 되는 차였기 때문에 창밖에 북한 주민의 표정까지 읽을 수 있었지 그렇지 않았더라면 황색 흙먼지로 창문을 열 수조차 없으므로 숨이 막혔을 것이다.

창밖으로 소를 몰고 가는 깡마른 나이 든 노인을 보면서 가슴에 안쓰러움이 복바쳐 오르면서 어느새 내 눈엔 눈물이 글썽거렸다. 지금의 이 감정은 아니 그 노인을 보기 이전부터이었는지도 모른다.

메마른 논바닥 위에 간간이 눈에 보이는 가축이 있었는데 바로 그것은 소와 염소였으며 나는 그 가축을 보면서 이미 눈물을 준비해 놓은 것인지도 모른다. 그것은 내가 풍부한 감수성이 있어서가 아니라 뼈밖에 남아 있지 않은 그 가엾은 가축들을 보면서였다.

농지정리는 대부분이 반듯하게 잘 되어 있었지만 모내기철인데도 불구하고 가뭄 때문인지 논에는 물이 부족했다. 저 앞 멀리서 눈에 들어오는 깃발이 휘날리고 있었는데 자세히 확인하니 주민들이 공동으로 모내기하는 논에 논둑을 따라서 빨간 깃발이 무수히 꽂혀 있었다. 그리고 그 옆에 "모든 인민 총단결하여 ....총력 투쟁하자" 라는 플래카드가 걸려 있었다. 그제야 나는 정신이 바짝 들었다.

아! 나는 착각을 하고 있었구나. 이 곳은 내고향 시골이 아니라 북한 땅에 와 있다는 사실을 잠시나마 잊고 있었던 것이다.

한참을 농로 같은 좁은 길을 가고 나니 작은 도시에 진입하였는데 남한의 군청 소재지가 있는 읍 정도의 도시였다. 이곳 도로는 콘크리트 포장이 되어 있어서 덜컹거림과 흙먼지가 없어서 인지 한결 편하게 바깥 구경을 할 수 있었다.

길가로 놓인 상점과 함석 철판의 간판. 길가에 뛰어 노는 북한 어린이들, 그리고 우리와 비슷한 아파트가 있는데 4~5층 정도 되는 것 같았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창문이 유리로 되어 있는 게 아니라 모두 비닐로 덕지덕지 붙여져 있었으며 외관은 콘크리트 그대로이며 페인트나 외장이 전혀 되어 있지 않았다.

또 곳곳에 건물을 공사하다 그만둔 채 뼈대만 놔둔 건물들이 많이 보였으며 경제 사정이 어려워지면서 수년 동안 방치해 놔서인지 흉물스게까지 느껴졌다.

그러나 이런 건물들에 비해 아주 웅장하고 깨끗하게 채색된 건물이 보였는데 당 건물이었다. 우리로 말하자면 동사무소나 면사무소 같은 관공서였다. 이것은 주위의 건물과 너무나 확연하게 차이가 났다.
순간 나는 굶주리고 헐벗은 북한 주민들이 저 웅장한 건물을 보고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하는 강한 의구심을 떨쳐버릴 수가 없다.

이렇게 바쁘게 두리번거리며 가다 보니 어느덧 저녁겸 휴식을 취하는 곳에 다다랐다. 이곳 간판을 보니 신흥장여관이라고 큼지막하게 쓰여 있었다. 남한의 관광호텔급 정도 되었으며 전통 한옥의 기와 지붕에 콘크리트 5층 정도의 구조로 크고 넓은 건물이었다. 1층에는 로비와 기념품 판매점, 3층 부터는 객실, 그리고 2층 왼편에는 대형 연회장 있고 오른편에는 김일성 주석이 왔다가 교시를 내렸다고 하는 성스러운 곳이라면서 우리에게는 공개하지 않았다.

이곳은 북한 실정에 비해 너무 고급스럽고 분수에 넘치는 환경 같았다. 여기까지 오는 과정에서 가슴아파 하고 또 직접 내 눈으로 확인했던 황폐한 들녘에서 본 북한의 모습은 전혀 찾아 볼 수도 느낄 수도 없을 만큼 고급스럽게 꾸며졌으며 사치스럽기까지 했다.

여기에 근무하는 종업원 또한 깔끔한 정장 차림을 한 남자와 여자 10여명의 근무자가 우리를 환하게 반기면서 음식을 차리고 있었다. 우리를 대하는 태도에서 표정까지 어찌나 정성껏 네간단한 농담까지도 하는 여유를 찾을 수 있었다. 이것은 정말 놀라운 일이었다. 만난 지 단 몇 분도 지내지 않아서 이렇게 친숙해질 수 있다는 것이.

물론 그들은 사전에 우리 일행의 신상 정보를 익혀서 많은 교육을 받았으리라고 생각한다. 철두철미하게 대비하고 연습을 한다는 얘기를 먼저 갔다 온 사람들에게 들었기 때문이다.

그렇다 치더라도 이렇게 쉽게 빗장이 풀릴 수 있는 것은 우리의 동포이기 때문일 것이다. 아무리 이념 교육과 정신적 세뇌 교육을 받았다 하더라도 내가 보기엔 우리와 같은 사람이며 한민족임에는 틀림없었다.

우리 일행 모두는 비행기에서 먹은 점심이 전부였기 때문에 많이 배가 고팠다. 원탁의 식탁에 4명씩 둘러 않아서 음식을 맛있게 먹었다. 주 메뉴는 흰쌀밥에 육개장, 그리고 생선, 닭고기, 고사리나물 등 10가지 정도의 풍성한 반찬이 올라왔다. 내가 먹기엔 조금 매운맛 같았지만 워낙 배가 고픈 상태라 맛있게 먹었다.

여기에 북한 맥주, 소주, 주스, 사이다 등이 곁들여 나왔는데 모두들 맥주에 손이 많이 가는 것 같았다. 맥주맛은 좀 씁쓰름해서 시원한 맛은 느껴지지 않았고, 소주는 좀 독한 냄새가 풍기어 냄새만 맡고 마시진 않았다. 나는 모든 것을 음미 해보고 느껴보고 싶었다.

그러나 음식을 먹으면서도 굶주리고 헐벗은 북한 주민들의 식량을 우리가 축내는 것 같은 생각이 뇌리를 스치면서 갑자기 미안하다는 마음이 앞섰다.

북한이 경제적으로 극한 빈곤 생활이 한계점에 이른 것이 어제 오늘이 아닌 것을 잘 알고 있는 우리가 그 공산주의 체제가 우월하다고 선전하기 위한 허세와 더불어 이 융숭한 대접을 받고 속아 주는 척 하자니 나 자신이 너무 하는 것 같아 마음이 아팠다.




2001/09/08 오후 9:3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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