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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험-북한에서 비파괴검사 생활(5)
부재 : 배고픈자의 고통과 사회주의 노선
나는 같은 장소에서 북한 근로자들과 표면적인 이유에선 같은 목적을 가지고 일을 하고 있지만 북한 근로자는 우리가 고용하여 노동을 제공하는 그런 위치이고, 우리는 북한을 돕기 위한 위치지만 사용자 입장에서 일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사뭇 다른 감정으로 계약상의 "갑"과 "을", "고용자와 피고용자", "노동자와 사용자", "도움을 주는 자와 받는 자", 이런 식의 관계가 은연중에 인식되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과의 관계는 어딘가 모르게 부자연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나는 나와 비슷한 나이의 북한 근로자와 눈이 마주치자 담배 한 개비를 피우자고 제안하여 잠시 휴식을 취하였다. 나는 원래 담배를 많이 피지 않는데도 항상 담배는 꼭 가지고 다녔다. 그 이유는 가끔 맹랑한 허상을 생각할 때면 담배를 연거푸 피우는 습관이 있기 때문이다.
자연스럽게 담배를 내가 먼저 주면서 같이 앉아 얼굴을 마주보며 정식적인 상견례를 하는 샘이 되었다. 나는 이 틈에 세세하게 그들의 얼굴을 뜯어 보았다. 내기 느낀 첫 감정은 정말 순박함 그 자체였다. 그는 내가 준 담배를 피우면서 가슴속 깊이 들이마시면서 남쪽 담배의 맛을 느껴보려고 하는 것 같았다. 북한 담배와 우리 담배의 질적인 차이는 경제적인 격차 만큼이나 차이가 있었다.
어느덧 우리는 담배 한 개비로 친숙해지게 되었다. 이쪽에 와있는 대부분의 북한 근로자들은 담배를 모두 피우는 것 같았다. 그러니까 우리 근로자의 흡연률 보다 훨씬 높은 편이다. 조금 의아스러운 부분이었으나 그들은 아마도 당에서 담배가 공급되는 듯 싶어서 많이 피우는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나는 그들과 같이 앉아 있으면서 조금 불쾌한 듯한 무언가를 느낄 수 있었지만 그 자리에서 드러내놓고 표현하지는 못했다. 그 냄새는 바로 땀에 찌든 사람냄새였다. 정말 쾌쾌한 냄새가 코를 찌를 듯 했다. 이러한 냄새는 북한 근로자 모두에게서 나는 공통된 냄새였다. 그렇다고 내가 아주 깔끔을 떠는 사람도 아닌데 이 냄새를 바로 느낄 수 있었다. 그 들은 잘 씻지 않는다고 하였다. 왜냐하면 우리처럼 샤워 시설이나 씻을 수 있는 수도 시설이 집에는 되어있지 않기 때문에 목욕이나 샤워는 엄두도 못 낼 사정이라고 한다. 그래서 목욕은 일년에 몇 번 하는 것처럼 연례행사 치르듯 한다고 하였다.
그래도 지금은 우리측 근로자들이 많이 이해를 하고 있다고 한다. 초창기에는 북한 근로자들 몸에서 어찌나 냄새가 많이 나는지 같이 일을 할 수가 없을 정도이었고 이로 인해 북한 근로자와 마찰도 자주 일어났다고 한다. 그러나 지금은 그때에 비하면 많이 좋아졌고 우리 근로자들도 모두들 그들의 사정을 알고 이해하였다.
어느덧 오전 시간이 지나고 점심시간이 되었다. 점심은 우리측 구내 식당에서 같은 메뉴에 북한근로자와 우리 근로자 사이에 칸막이로 구분되어 있는 식당에서 식사를 했다. 땀흘리고 난 후 먹는 밥은 정말 꿀맛과도 같았다. 우리측에 일하러 온 북한 근로자들은 밥먹는 시간이 제일 기다려진다고 한다. 쌀밥에 고기반찬 그리고 자유배식이기 때문에 얼마든지 마음껏 먹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곳 식당은 단체급식을 전문으로 하는 업체에서 운영을 하기 때문에 이윤을 남겨야 하는데 북한근로자의 식사량이 너무 많아서 수지타산이 맞지 않아 한국전력에서 북한근로자의 식사량에 대해서는 별도로 추가 계산을 해준다고 하였다. 그 수가 한두 명도 아니고 100여명이나 되니 그럴 만도 하였다. 이를 보면 얼마나 많이 먹는지 상상이 갈 법도 하다.
사람이 사는 것 중에서 하나가 결국은 먹고 살자는 것 아니겠는가? 그런데 그 일차적이고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있다는데 얼마나 힘든 생활을 하고 있을지는 상상이 가고도 남을 일이다.
굶주린 북한주민! 북한에는 먹을 것이 없어서 굶어서 죽는 어린아이까지 상당한 숫자가 된다고 언론을 통해 접한 바 있다. 그러나 그런 뉴스들을 볼 때마다 속직히 나는 실감이 나지 않았다. 직접 내 생활에 지장을 주는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은 먹을게 없어서 굶어 죽을 수 있다는 사실이 이 곳 북한 주민의 생활상을 직접 눈으로 확인한 후에야 남의 일 같지가 않다는 심정이 되었다.
국제 구호 단체를 비롯하여 우리 나라에서도 쌀과 식량을 지원해주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그 지원해주는 량은 북한 전체 부족분에 대하여는 크게 미치지 못한다고 들었다. 더군다나 우리 나라는 북한지원에 대해 막 퍼주기란 비판과, 식량지원이 군량미로 전용된다느니, 또 다른 사람은 우리가 지원한 식량이 북한주민의 입에 들어가는지 확인을 할 수 없으니 지원해줄 수 없고, 그 경로를 확인할 수 있을 때 지원을 해줘야 한다고, 이런 저런 이유를 들어 식량지원에 반대하는 이들이 있다고 알고 있다.
배부른 자가 어찌 배고픈 자의 고통을 느낄 수 있겠는가?
그 고통이 이쪽 저쪽을 선택할 수 있는 고통이겠는가 ?
트집 잡으려면 어디 트집 잡히지 않을 일이 있을까 생각한다. 그 비판적인 사람들의 주장대로라면 우리가 지원해주는 쌀에 무슨 전자 장치라도 해서 그 쌀의 경로를 추적할 수밖에 없는 도리 아닐까?
아무리 생각해도 그들 주장을 만족할 대안이 보이지 않는다. 아니 그렇게 주장하는 이들이 그 대안을 내놓아야 한다. 어떻게 해서 우리가 지원한 쌀이 북한 간부나 군량미로 전용되지 않고 순수하게 북한 주민의 입으로만 들어갈 수 있게 확인 할 수 있는지 말이다. 이에 대한 대안이나 방법 없이 그들이 비판만 한다면 무조건 반대를 하고 보자는 속셈이 드러나는 것이 아닌지 의심이 생긴다.
우리는 최소한 먹는 음식을 가지고는 장난은 치지 말아야 한다. 굶어 죽는 사람 앞에 두고 흥정을 하는 건 어딘가 모르게 비겁함과 비열함으로 밖에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아버지가 밉다고 그 밑에서 굶주려 허덕이는 자식들까지 죽게 할 수는 없지 않은가? 물론 그렇게 되기까지 사상이나 사회주의 노선은 그 책임은 부모가 당연히 져야함은 두말할 나이도 없다. 그러나 이러한 문제를 풀기란 앞으로 몇십 년의 노력이 더 필요할 것으로 생각된다.
북한에 쌀을 지원하는 문제에 대해서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일단 북한에 쌀이든 뭐든 살아갈 수 있게라도 지원해주고 그 후에 얽혀 있는 우리 민족사의 일들을 하나씩 풀어나가야 한다고 본다. 물론 여기서 지원이란 인도적인 차원에서의 지원이다. 여기에는 지적한 사람이 있었던 것처럼 그 지원되는 식량이 북한군량미로 전용되거나 당 간부만 살찌우고 북한 주민에게는 가지 않을 것을 염려하는 그런 시각을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 하더라도 인도적인 지원을 계속 해야한다. 아무리 군비로 전용되거나 간부가 착취하여 먹는다 하더라도 언젠가는 먹다 남은 밥티 하나라도 주민의 입에 떨어지지 않을까 하고 생각한다.
사람이란 배가 부르게 되면 긴장을 풀게되고 그러다 보면 좀더 나은 생활을 추구하게 될 것이고, 또 그렇게 하다보면 사회주의체제로서는 힘들 것이고 결국에는 개방의 물결을 막을 수 없지 않을까 생각한다.
2001/09/26 오전 10:15: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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