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 지역에서 근무하는 외국인 용병들이 느끼는 고용안정성에 대해 약간은 우려 섞인 측면을 소개하고자 한다.

 

한국이나 이곳 중동 지역이나 동료들이 고용 안정성에 대한 두려움이 강한 것을 느끼게 된다.

구성원 대부분이 용병이고 가족과 함께 생활해야 하는 여건 때문에 고용의 안정성은 곧 그 가족의 삶의 기반이 얼마나 안정적인지를 의미하게 된다.

 

중동이라고 해도 각 나라별로 약간의 차이점은 있기에, 이하의 내용은 현재 제가 근무하는 사우디 아람코를 기준으로 설명한다.

 

이곳 중동에서 직장을 잃는 다는 것은 단순히 수입이 몇달 동안 없거나, 한국 처럼 고용 보험을 받아 가면서 새로운 직장을 찾아 헤매여야 한다는 수준이 아니다.  이까마라고 부르는 거주증(Resident Permit)에 대한 Sponser가 사라지기에 2달 이내로 이땅을 떠나야 하며, 그 과정에서 차와 가재 도구등을 긴급하게 처분하거나 이사짐 싸들고 떠나야 한다. 친절하게도 이사 비용과 가족의 귀국 비용까지 지급해 주지만, 여기서 생활하던 가재 도구를 한국으로 가져 가는 것은 그리 추천하지 않는다.

 

고용 계약이 해지 되었음을 통보 받고 1달이 되면 노트북과 모든 업무용 도구들을 회사에 반납해야 하고, 출입증도 임시 출입증으로 교체된다.

당연히 회사 시스템에 더 이상 접근도 안되고 남은 기간에 이땅을 떠날 준비를 해야 한다.

혹시 주변에 있는 다른 회사에 입사를 할 수도 있겠으나, 현실적으로 너무 촉박한 일정과 사우디내의 근로 계약 조건 제약으로 인해, 이렇게 좋은 상황은 예상하기 쉽지 않다.  사우디 아람코에 근무하던 직원이 사우디 내에 다른 계열사 혹은 관련이 있는 곳으로 입사는 못하도록 상호 협약이 되어 있다고 한다. 

즉 사우디 내에서는 일자리를 구할 수 없고, 인접 국가에 새로운 일자리를 찾거나 유럽 혹은 미국으로 발걸음을 돌려야 한다.

 

심지어 새로 입사한 친구가 6개월의 견습기간(Probation Period)를 마치는 마지막 날에 퇴사를 고지 받는 비정한 상황도 옆에서 지켜볼 수 있었다.

Probation 기간에 퇴사를 통보 받으면, 정규직 사원과는 달리 2달 간의 유예 기간 없이 바로 이 땅을 떠나야 한다.

그런 모습을 보면, 참 냉정하다 못해 비정하다는 느낌과 함께 내가 저런 상황에 처하면 어떨까를 떠올리게 된다.

한마디로 일 못하면 바로 짤린다. 사연 없는 무덤이 없다고 하지만, 여기서는 핑계가 통하지 않고 결과만 가지고 따진다.

기술적인 측면에서는 본인들 보다 경험과 지식이 우수한 용병들의 의견을 과감하게 수용하지만, 그 과정의 보고서 작성이나 기타 일반 업무의 진행 과정에서는 철저하게 본인의 의견을 피력하고 용병답게 처신할 것을 요구하는 모습을 자주 확인할 수 있다.

한국에서 Junior들이 조직내 상사의 업무 지시에 저항하는 경우도 많이 접해 봤는데, 여기서는 그런 항명은 바로 계약 해지의 주요 요건이 된다. 

어설픈 영어로 '아니 그런게 어디 있냐고 따지거나, 내가 직장 생활 몇 10년 동안 이런거 처음 본다'라고 한마디 던졌던 동료들이 바로 집에 가는 경우도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다. 따지고 싶으면 명확한 근거와 자료를 기준으로 정중하게 본인의 의견을 피력할 수 있어야 하며, 명확하게 본인의 업무가 아닌 사항에 대해서는 굳이 관여하지 말라고 조언하고 싶다.

 

제가 일하는 곳은 성장하는 신설조직이고 최근의 조직 개편에서도 대규모 성장이 있었기에, 주변의 동료등이 앞으로 한 3년 정도는 짤릴 일 없이 잘 갈거라고 안심하고 있으나, 그 3년 후에는 어떤 일이 벌어질지에 대해 다들 항상 우려하고 있다.

한 3년 쯤 뒤에는 누군가 성과를 기준으로 그 조직을 평가하려고 할 것이기에 용병들은 조심하고 늘 대비를 하고 있다. 

만약에 그 시점에 부정적인 평가가 나오면 심각한 상황이 발생할 수 있기에 늘 조심하고 자기 성과와 평판 관리에 진심이다. 

 

늘 공개적으로 상대방을 칭찬하고 좋은 소리를 하지만, 대개의 경우에 그들 용병의 진심이 아닌 것을 지주 경험하게 된다.

특히 몇몇 나라 출신들은 기회만 되면 상사들을 찾아가서 다른 사람을 비방하고 자신을 내세우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수시로 확인할 수 있다.

현장에 문제가 생겨서 자료 확인을 하던 중에, 내가 지적하는 내용을 이미 과거에 누군가가 같은 문구로 지적을 했기에 그게 누군지 찾아 봤더니, 당시 현장에도 없었던 지금 그 자리에 있는 3인이 모두 자기가 그걸 했다고 손을 드는 상황은 그냥 어이없다 못해 쓴 웃음만 나오게 한다.

그들은 현재 주인이 없는 그 성과를 어떻게 해서든지 자기의 성과로 만들어 홍보 하고 싶어 하는 것이다.

 

유가 변동에 따른 고용의 탄력성과 조직의 이합집산이 한국에서 경험한 것 보다 더 큰 상황 속에서 용병들이 느끼는 고용안정의 두려움은 충분하게 공감이 된다.

이곳에서도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한국과 마찬가지로  뭉치면 흩어 놓고 흩어지면 다시 모여 놓는 조직 개편의 과정이 자주 확인된다.

한국과의 차이점이라고 하면, 한국의 조직 개편은 하부 조직의 팀장들 까지 미리 다 선정하고 발표를 하지만, 여기에서는 그 조직의 최고 대장만 선임되고 그 하부 조직 구성과 그 리더들은 그날 이후로 하나씩 채워지고 있다.

당연히 하부 조직의 업무분장(Role & Responsibility, Worflow)도 그날 이후로 정리되기 시작하고, 그런 일반 행정 업무를 진행하기 위해 거의 1년 가까이 시간이 자연스럽게 흘러갔던 기억이 있다.

 

최근에 한국인들이 몇 사람 새로 입사를 했고, 여전히 많은 Junior들이 이곳을 동경하는 모습을 보게 된다.

외형적으로 한국에 비해 높은 임금과 우수한 복지 혜택이 주어지지만, 그 이면을 바라보면 그게 세상의 전부는 아닌 것 같다는 개인적인 판단을 가지고 있다.

전 직장에서 받던 급여의 1.3 ~ 1.5배 정도를 제공 받고, 세금이 없으므로 실질 소득은 거의 2배 정도가 되는 상황은 매우 좋은 계약 조건이 된다.

사무실까지 차로 6분 거리의 출근길에는 교통 정체 같은 단어는 상상할 수 없고, 출퇴근 길에 느끼는 피로는 잊은 지 오래된다.

잔듸가 깔리고 나무를 가꿀 수 있는 미국식 뒷 마당이 있는 넓은 주택을 제공 받고, 오후 3시면 퇴근하고 가족과 함께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낼 수 있다.

자연스럽게 부부 싸움은 추억으로 남게 되고, 가족간의 많은 대화와 가사 협동을 통해 부부 관계도 매우 좋아진다.

도전의 길이 넓고 연공서열이나 학연지연에 따른 줄서기를 하지 않아도 되고, 철저하게 개인의 능력에 따른 직업 선택이 가능한 것은 분명한 장점이다.

여기도 아부하고 처세술에 능한 용병들이 눈에 띄이기는 하지만, 그래봐야 용병의 신분 한계를 벗어나기 어렵고 신분 상승의 한계는 명확하기에, 그 효과는 한국에 비해 그리 크지 않다.

어린 자녀들에게 고등학교 까지 무료 교육이 지원되고, 해외 Boarding School에 보내면 그 비용도 지원해 주는 걸 감안하면 거의 신의 직장이라고 할 수 있다. 영국이나 미국의 유명 Boarding School도 자녀에게 좋은 선택지가 될 수 있으니, 한국에서 평범한 직장인으로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엄청난 혜택이된다.

해외로 대학을 간 자녀가 부모를 만나기 위해 1년에 2번 정도 사우디 방문하는 비용까지 제공해 주는 것을 보면 이들의 복지 혜택은 감탄할 정도가 된다.

치과를 제외한 모든 의료가 무료로 제공되며, 의료진의 전문성은 평가하기 어려우나 너무나 친절하고 세세한 진료에 자주 감동하게 된다.

 

하지만 아빠의 고용 안정성에 문제가 생기면 얘기는 달라진다.

2달 내로 사우디를 떠나야 하기에 자칫 가족이 모두 유량 생활을 해야 하는 위험이 있고, 다시 돌아갈 퇴로를 확보하지 못한다면 심각한 문제가 생길 수도 있다. 

문제는 다시 한국으로 돌아갈 퇴로 확보가 그리 쉽지 않다는 점이다.

전직장 혹은 유사 직군으로 복귀가 가능하다면 문제가 없겠으나, 그렇지 못하다면 경제적인 어려움뿐만 아니라 이미 삶의 패턴이 많이 변화한 가족에게 수용하기 쉽지 않은 현실을 요구해야 한다.  아쉽게도 현재 Oil & Gas 영역의 EPC 사업이 대부분 정리 단계로 접어든 한국의 현실에서 퇴로 확보는 그리 만만한 과정이 아닐 것이다.

차선책으로 인접 국가로 직장을 옮기거나, 아예 제 3국으로 가기도 하는데, 그런 상황을 접하게 되는 가족 특히 아직 학교 생활을 통해 사회를 익히고 자아를 키워가야 하는 어린 자녀들의 마음은 어떨지 우려되기도 한다.

 

며칠전에 부서내 서무 업무를 보는 스리랑카 출신의 직원이 자신의 한달 월급이 500불이 안된다고 하면서, 자기 사촌이 한국에서 일하고 한달 급여가 3500불이 넘는다고 하면서 부러움을 표현했다. 그리고 자기도 한국에 가고 싶다는 얘기를 하면서 그렇게 좋은 한국에서 왜 여기를 왔느냐고 내게 물었다.

그냥 웃고 넘기기는 했으나, 아마도 그 질문에는 굉장히 많은 이면이 내포되어 있을 것으로 이해한다.

 

처음 내가 한국에서 적어도 당분간 안정적일 것 같은 대기업 임원 생황을 스스로 청산하고 사우디로 옮길때의 목표는 돈이 전부가 아니었고, 내가 75세까지 현역을 일하기 위한 기반을 확보하기 위함이었다. 세계 최고 수준의 Management System을 경험하고 그 경력이 내게 도움이 될 것이라고 지금도 믿고 있다.

그리고 지금 여기서는 나와 같은 용병을 다들 Expatriate라고 부르지만, 나는 Soldier of Fortune 이라고 표현한다.

 

세상은 넓고 할일은 많지만, 알고 덤벼야 당황하지 않게 된다. 

TGOO 2024-01-26 14:07 추천: 1 비추천: 0

해외에 나와 Expat으로 나온 사람은 No pain No gain이라는 말만 적용되는게 아니라 No risk No gain도 적용이 되는 듯 합니다. 아무 risk도 감당하지 않고 그저 노력만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은 매우 제한적인 반면 그러한 고용불안정의 환경을 무릎쓰고 도전할 때 분명 얻는 것은 구별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관리자 2024-01-26 19:21

맞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전할 충분한 가치가 있죠. 다만 너무 좋은 얘기들만 가득한 상황에서, 아름다운 환상만 가지고 달려드는 경우도 있기에, 누군가는 동전의 뒷면을 보여주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테시 2024-01-29 11:48 추천: 1 비추천: 0

항상 아람코에 취업에 대해서 장미빛 미래만 쓰는 글들이 많은데 현직에서 근무하시면서 남기시는 글들이 많은 생각을 하게 됩니다. 

고용안정성과 여러가지 것들이 너무나 중요한것 같습니다. 특히 퇴로 확보라는 측면에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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