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지역에 근무하면서 가장 많이 접하는 단어중에 하나가 인샬라(inshallah)일 것이다.
신의 뜻에 따라서 혹은 신의 은총에 감사하는 등으로 헤석되는 데, 이를 나와 같은 외국인의 입장에서는 종종 '되는 것도 없고 안되는 것도 없는' 세상을 표현하는 용어처럼 인식된다. 실제로 여기 오래 근무한 많은 사람들이 같은 표현을 쓰고 있으니, 특정인에 제한된 경험과 인식만은 아닐 것이다.
정상적으로 진행되어야 할 일들이 알 수 없는 이유로 혹은 우리네 생각과 관습을 기준으로는 정말로 말도 안되는 이유로 지연이 되거나 심지어 취소가 되기도 하고, 그러다가도 어느 순간에 원래 아무런 일도 없었던 것 처럼 해결되어 있기도 한다. 단순히 시간이 지나면 해결될 거라는 수준의 얘기가 아니라 참으로 복잡한 여러가지 사안들이 서로 얽혀있는 경우를 자주 접하게 된다.
비슷한 시기에 입사한 다른 동료들의 거주증이나 운전면허증이 불과 몇주만에 나오는데, 그들 보다 선진국에서 왔다는 이유만으로 훨씬 간편한 절차를 거치게 되는 나의 서류들이 지연되어 몇달씩 사람 다운 삶을 이어나가기 어려운 상황을 접하게 되기도 했었다. 참고로 여기서 살아가려면 거주증이 기본이다. 거주증이 없으면 월급을 수령할 통장 개설도 안되고, 차를 살 수도 없고, 가족을 데려올 수도 없다. 이럴때마다 자주 듣는 얘기가 미소를 띄우며 전하는 인샬라와 함둘라이며, 그 단어속에서는 느껴지는 감정은 참 복잡하다.
공항에서 입국시에 잘못 기재된 신상 정보를 수정하는 데, 하염없는 시간을 보내면서 혹시라도 문제를 해결하지 못할 상황을 걱정하는 지인도 있었다.
한국에서 들어온 아내의 성별이 여자가 아닌 남자로 기재된 것을 정정하기 위해 홀로 고군분투했던 후배의 사연은 구구절절이 울분이 공감되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확인되는 것은 여기의 시스템은 정말 잘되어 있으나, 그 운영에 있어서는 한심하다고 느낄 정도로 아쉬운 상황들이 많다.
아마도 책임져 주는 사람이 없고, 결론을 내려 주는 사람도 없으며, 무엇이 기준인지 어떻게 처리되는 것이 옳은지에 대한 기준이 공개된 것도 찾기 어렵다.
처음 중동으로 직장을 옮긴 직후에 옆에 있는 동료들 중에는 스스로 느끼는 이런 불합리를 견디지 못하고 공개적으로 울분을 토로하는 경우를 접할 수 있었다.
여타 다른 중동에 근무한 경혐을 가지고 있는 경력자들 조차도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고 불만을 제기하는 경우를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다.
기본적인 생활을 위한 거주증이나 운전면허증 그리고 가족을 데려오기 위한 비자 문제 해결 등의 업무 외적인 것 뿐만 아니라, 현지인으로 구성된 조직관리자의 무지와 약간은 자존심이 섞인 고집을 보면서 다양한 불만을 제기하는 사례들이 있었다.
업무의 효용성이나 성과 보다는 보여주기 식의 업무 추진에 거부감을 표명하는 동료도 있었고, 업무 지시의 반복된 수정에 대해 불만을 제기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리고 어느새 2년 그리고 6개월의 시간이 훌쩍 지나가면서 최근에 새로 입사한 친구들을 제외하고는 더이상 그런 불만을 제기하는 사람을 찾아 보기 힘들다.
이미 기본적인 삶에 필요한 것들이 다들 완성되어 있기에 그런 불만이 없을 수도 있겠으나, 가만히 살펴보면 순치(馴致)라는 단어가 절로 떠오른다.
숫소가 거세를 당하고 야생마가 재갈이 채워지면서 순해지는 것 처럼, 다들 나름의 목소리를 높이던 시기를 지나서 조용히 용병의 삶을 살아가는 것 같다.
아쉬운 것은 다들 전문성을 기반으로 비싼 연봉과 복지 혜택을 받으면서 사우디아라비아로 이주했으나, 그렇게 변화하는 과정에서 애사심이나 조직에 대한 애착은 점차 사라지고, 아무도 책임지지 않은 상황속에서 혹시라도 책임질 상황에 자신이 놓여지는 상황을 만들지 않으려는 경향이 점차 강해진다.
그러다 보니 누구를 통하면 뭐든지 잘된다는 비정상적인 Work Flow가 공공연한 비밀이 되기도 한다.
나의 경우에도 회사 시스템 내에 내 이름이 잘못되어 수정하려는데, HR, IT, Security등 여러 부서를 다 돌아다녔지만 다들 자기들이 일이 아니라는 답변만 주고 어떻게 하면 해결할 수 있는 지에 대해서 해답을 주는 경우는 없었다. 그러다가 우연히 찾은 Canadian이 자기 지인들이 인맥을 통해 회사의 공식 Work Flow와는 무관하게 너무나 쉽게 내 문제를 해결해 주는 것을 보면서, 고맙기도 하고 허망하기도 하면서 도대체 시스템이 왜 이렇게 작동하는 지에 대해 아쉬움을 가졌다.
최근에 한국업체들이 한동안 잠잠했던 중동의 EPC Project를 수주했다고 홍보하는 내용을 언론을 통해 접하게 된다.
내가 한국에서 몸 담았던 전 직장은 이미 직원들을 다들 내 보내고 더 이상 Oil & Gas 시장에 도전할 의지를 스스로 꺽어 버렸지만, 옛 동료들이 이직한 회사에서 새롭게 경쟁력을 가지고 성과를 창출함에 격려의 박수를 보낸다. 그리고 계약서에 도장이 마르기도 전에 일정을 단축하고 비용을 절감할 계획을 세우는 그들에게 인샬라가 주는 교훈을 알려주고 싶다.
지금부터 그대들이 마주해야 할 상대는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용병들의 집단이며 인샬라가 지배하는 세상이다.
순치된 동물은 인간에게 이롭게 되지만, 순치된 용병은 주변 사람들을 피곤하게 한다.
사이트 특성 상 거의 모든 내용들이 공학적인 내용인데, 많은 생각을 하게 되는 인문학적인 글에 신선함과 감동을 느낍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