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첸의 석유산업을 이야기하면서 아제르바이잔을 빼놓을 수는 없다.

많은 사람들이 석유산업의 역사가 1930년대 중동 지역의 유전 개발과 함께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으로 알고 있지만, 실제로는 그보다 훨씬 이전부터 카스피해 연안에서 대규모 석유산업이 발전하고 있었다.

특히 1901년 세계 최대 석유 생산국은 러시아 제국이었으며, 그 중심지는 오늘날 아제르바이잔의 수도인 바쿠(Baku)였다.

개인적으로도 아제르바이잔과는 간접적인 인연이 있다.

필자가 과거 근무했던 국내 EPC 기업은 1995년경 아제르바이잔의 정유공장 프로젝트에 참여하여 기본설계부터 시공, 시운전에 이르는 업무를 수행한 바 있다.

현재 함께 근무하고 있는 동료들 가운데 과거 아제르바이잔에서 근무했던 이들은 당시 사용하던 설계도면에서 한국 기업의 이름을 발견했던 일을 기억하고 있다. 오래전 한국 기업이 수행한 프로젝트의 흔적이 현지에 남아 있다는 점에서 개인적으로도 흥미로운 사례다.

 

아제르바이잔과 석유의 역사

바쿠 유전에서 현대 석유산업의 형성, 소련의 산업화, 카스피해 원유 수송망까지

 

아제르바이잔(Azerbaijan)은 세계 석유산업의 역사에서 특별한 위치를 차지한다.

오늘날 미국이나 중동이 세계 석유산업의 중심지로 인식되지만, 19세기 후반 근대적인 석유 생산과 정제, 수송 및 국제 거래가 급속히 발전한 지역 중 하나가 바로 아제르바이잔의 바쿠(Baku)였다.

바쿠는 카스피해 서안에 위치하며, 지표에 자연적으로 스며 나오는 석유와 천연가스가 오래전부터 알려져 있었다.

이후 제정 러시아와 소련의 주요 석유 생산기지로 발전하였고, 1991년 독립 이후에는 서방 석유기업의 투자와 새로운 국제 송유관 건설을 통해 카스피해 에너지 개발의 중심지로 다시 부상하였다.

특히 아제르바이잔의 석유 역사를 이해하면, 앞서 살펴본 체첸과 러시아의 송유관 갈등이 왜 발생했는지도 보다 명확해진다.

체첸은 단순한 산유지역이 아니라 바쿠에서 생산된 원유를 흑해로 수송하는 북부 수송로의 경유지였기 때문이다.

 

1. 근대 석유산업의 시작 — 미국보다 앞선 바쿠의 시추

175 il əvvəl Bakıda qazılan dünyanın ilk neft quyusu - ... Azerbaijan—The Land of Unquenchable Fire Фото Баку 19 века. Город Баку. Панорама завода Нобеля в Баку. Нефтяные резервуары на заводе Нобеля. Откуда Нобель взял деньги на Нобелевскую премию. Транспортировка Нефти. Фотография Баку. Строительство грузовых судов на верфи Нобеля в Баку. Товарищество нефтяного производства братьев Нобель» в 1903 году. Сайт. Фотография. Фото. Картинка. Картинка. Реферат

 

바쿠의 석유 이용 역사는 수백 년 이상 거슬러 올라간다.

중세 아랍 지리학자들은 압셰론반도의 석유를 기록했으며, 13세기 마르코 폴로도 이 지역의 석유 거래를 언급하였다.

근대적인 석유산업의 전환점은 1846년 바쿠 인근 비비헤이바트(Bibi-Heybat)에서 약 21m 깊이의 기계식 시추 유정이 개발된 사건이다.

이는 미국 펜실베이니아에서 1859년 드레이크(Edwin Drake)가 시추한 유정보다 13년 앞선 사례다.

다만 세계 최초의 상업용 유정에 대한 정의는 자료마다 다르다.

따라서 바쿠의 1846년 유정은 근대 기계식 석유 시추의 가장 이른 사례 중 하나로 설명하는 것이 정확하다.

이후 바쿠에서는 정유시설, 저장시설, 송유관과 철도가 연이어 건설되었다.

 

2. 노벨과 로스차일드가 참여한 세계적인 석유산업 중심지

19세기 후반 바쿠 석유산업에는 유럽의 자본과 기술이 대거 유입되었다.

대표적인 기업이 노벨 형제의 석유회사 브라노벨(Branobel)과 로스차일드 가문의 카스피해·흑해 석유회사였다.

노벨 형제는 유전 개발과 정유시설뿐 아니라 유조선과 수송망에도 투자하였다.

1878년에는 발라하니 유전과 바쿠 정유시설을 연결하는 약 12km의 송유관이 건설되었으며, 1883년 바쿠–바투미 철도 개통은 석유제품의 흑해 수출을 확대하는 계기가 되었다.

1901년 아제르바이잔 원유 생산량: 약 1,100만 톤/년

당시 세계 원유 생산량의 절반 이상을 차지한 것으로 기록된다.

바쿠는 원유 생산뿐 아니라 정유, 저장, 수송, 금융과 무역을 결합한 국제 석유산업의 중심지로 성장하였다.

 

3. 소련 시대와 제2차 세계대전

1920년 아제르바이잔이 소련 체제에 편입되면서 석유산업도 국유화되었다.

소련 정부는 바쿠의 유전과 정유시설을 국가 산업화의 핵심 기반으로 활용하였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바쿠는 소련군의 연료 공급에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1941년 아제르바이잔의 원유 생산량은 약 2,350만 톤으로 정점에 도달하였다.

독일군이 1942년 캅카스로 진격한 군사작전에도 바쿠를 비롯한 석유 생산지역 확보라는 목적이 있었으나, 독일군은 바쿠에 도달하지 못하였다.

전후에는 육상 유전뿐 아니라 카스피해 해상 유전 개발이 확대되었다.

특히 1949년 생산을 시작한 네프트 다슐라르(Neft Daşları, Oil Rocks)는 해상 석유 생산시설의 발전을 상징하는 사례로 평가된다.

 

Oil wells at Baku on the Caspian Sea, Russia, c1890 Azerbaijan—The Land of Unquenchable Fire Сталин - Байбакову: "Чтобы ни одна капля нефти не досталась немцам" - Родина

 

4. 독립 이후 — 석유산업의 재도약

1991년 소련 붕괴로 독립한 아제르바이잔은 기존 육상 유전의 노후화와 투자 부족이라는 문제에 직면하였다.

전환점은 1994년 9월 20일 체결된 이른바 세기의 계약(Contract of the Century)이었다.

아제리–치라그–구나슐리(Azeri–Chirag–Gunashli, ACG) 해상 유전 개발을 위한 생산물분배계약(PSA)으로, BP를 비롯한 여러 국제 석유기업이 참여하였다.

이 계약을 통해 아제르바이잔은 외국 자본과 해양 개발기술을 유치하고 대규모 원유 수출을 확대할 수 있었다.

 

5. 바쿠 원유와 국제 송유관의 발전

File:Baku–Tbilisi–Ceyhan pipeline (BTC Pipeline).svg - Wikimedia Commons

 

아제르바이잔의 원유 개발에서 중요한 문제는 내륙해인 카스피해에서 생산한 원유를 어떻게 국제시장으로 운송할 것인가였다.

 

수송로 주요 경로 상업적 운송 개시
바쿠–노보로시스크 아제르바이잔 → 러시아 → 흑해 1997년 수출용 운영
바쿠–수프사 아제르바이잔 → 조지아 → 흑해 1999년
바쿠–트빌리시–제이한(BTC) 아제르바이잔 → 조지아 → 튀르키예 지중해 2006년

 

북부 수송로인 바쿠–노보로시스크 송유관은 체첸을 경유하였다.

따라서 1990년대 체첸의 정치적 불안과 송유관 안전 문제는 아제르바이잔 원유의 수출에도 영향을 미쳤다.

반면 바쿠–수프사와 BTC 송유관은 러시아 영토를 통과하지 않는 수출 경로를 제공하였다.

이는 아제르바이잔이 특정 국가의 수송망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고 수출 경로를 다변화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6. 체첸의 석유산업과 비교

구분 아제르바이잔 체첸
역사적 중심지 바쿠 그로즈니
주요 발전 시기 19세기 후반~20세기 초 20세기 중반~1970년대 초
산업적 특성 대규모 생산·정제·수출 생산·정제 및 원유 수송
1990년대 변화 국제투자 유치와 해상 개발 확대 전쟁과 산업시설 파괴
전략적 중요성 카스피해 원유 공급 및 수출 러시아 북부 수송로의 경유지

 

두 지역은 모두 러시아 제국과 소련의 석유산업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였지만, 소련 해체 이후 서로 다른 경로를 걸었다.

 

아제르바이잔은 국제 석유기업과의 협력을 통해 생산기반과 수출망을 확대하였고, 체첸은 전쟁과 산업시설 파괴, 원유 절취와 불법 정제산업의 확산으로 기존 산업기반이 크게 약화되었다.

 

7. 맺음말

아제르바이잔의 석유 역사는 근대 석유산업의 발전 과정 자체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바쿠는 초기 기계식 시추, 정유기술, 송유관 및 유조선 운송의 발전을 이끈 주요 중심지였으며, 소련 시대에는 전략적인 에너지 공급기지로 기능하였다.

1991년 독립 이후에는 카스피해 해상 유전과 국제 송유관 개발을 통해 새로운 성장 기반을 마련하였다.

이 과정에서 러시아를 경유하는 북부 송유관, 체첸의 불안정, 조지아를 통한 대체 수송로 확보는 서로 연결된 문제였다.

따라서 체첸과 러시아의 송유관 갈등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체첸 내부의 석유산업뿐 아니라, 아제르바이잔 원유를 국제시장으로 운송하기 위한 국가 간 경쟁과 협력의 역사도 함께 살펴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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