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넬 할랜드 샌더스는 1890년 9월9일에 태어났습니다. 그의 나이 65세가 되던해부터 그는 활발하게 치킨 프렌차이징을 시작했고, 현재는 그의 치킨 프렌차이징이 세계에서 몇 안되는 큰 외식산업체로 성장했습니다.
KFC의 할아버지 인형이 바로 그 입니다.
커넬은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냈습니다. 커넬이 6살 때 그의 아버지는 돌아가셨고 그의 어머니가 아버지의 역할을 대신하는 동안 어린 커넬은 3살짜리 남동생과 어린 여동생을 스스로 돌봐야만 했습니다.
이런 연유로 그는 어려서 부터 집에서 요리를 자주 하게 되었고 많은 요리를 어린나이에 스스로 습득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가난했기에 10살 되던해 농장 근처에서 월 $2를 받으며 일을 시작해야 했으며 그의 젊음의 대부분을 생존을 위해 몇개의 직업을 전전해야 했습니다.
그의 직업의 편력은 대단했습니다. 젊은 시절 철도 소방원 일을 했으며, 보험 외판업, 오하이오 강의 유람선에서도 일했으며, 타이어를 팔았고, 편의점이 딸린 주유소도 경영을 했습니다.
하지만 그의 요리에 대한 열정은 식을 줄 몰랐습니다. 그가 요리에 대한 자신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시기는 의외로 늦게 찾아왔습니다.
그가 40살이 되던 해, 여전히 주유소일을 했지만 코빈(Corbin, Kentucky)에서 배고픈 여행객들이 주유소에 들렀을 때 치킨요리를 해주기 시작했습니다.
레스토랑을 운영한 것은 아니었고, 그의 식탁에서 여행객들에게 음식을 제공한 것이었습니다.
이로 인하여 그의 요리에 대한 입소문이 나기 시작했고 샌더스의 유명세는 점점더 성장했습니다. 주지사 루비 라푼 (Ruby Laffoon)은 그의 켄터키주의 대표적인 요리로 그의 치킨을 승화시킨 것을 기려 그를 켄터키주의 명예 대령 (Colonel: 커넬)으로 칭하였습니다.
그리고, 1939년도에 그의 첫번째 레스토랑이 던칸 하인즈 "Adventures in Good Eating" (맛있는 음식점등을 소개하는 잡지)지에 실리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승승장구하던 그에게 다시 시련이 다가오기까지는 그리 오랜기간이 필요하지 않았습니다.
1950년대 초, 새로운 고속도로가 도시정비사업의 일환으로 Corbin을 가로질러 가게 되었고 하루아침에 그는 파산하여 그의 사업은 경매에 넘어갔습니다.
이로 인하여 그는 사회보장기금 $105로 생활을 근근히 이어 가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그의 튀김 닭에 대한 강한 자신감을 가지고있었기에 1952년 새로운 사업인 치킨 프렌차이징을 시작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65세라는 노년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그는 시련에 좌절하지 않고 고물 자동차를 개조해 자신의 닭 요리기구를 싣고 전국 수십만 마일을 직접 돌아다니며 투자자와 체인점을 확보하는 강행군을 했습니다.
이러한 불굴의 노력으로 커넬의 KFC를 대변하는 인물로 남게 되었으며 많은 체인점을 두어 1976년도에는 커넬이 전세계에서 2번째로 인정받는 유명인으로 되기도 했습니다.
그는 사망하기 전까지 최소 400,000Km이상을 여행하며 KFC 왕국을 이루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모든 것은 그가 황혼기인 65세 때 파산후 받았던 105달러의 사회보장 지급금이 유일한 자본이 되었던 것입니다.
불굴의 샌더스가 남긴 말중에 가장 유명한 말은 "가장 자신 있는 일을 하라"입니다.
샌더스 본인도 자신이 가장 자신이 있는 일이 닭 요리라 생각했기에 비록 파산했지만 이를 기회로삼아 흔들림 없는 확신으로 나이를 극복하고 최고의 상품을 창출 한 것입니다.
이런 그는 자신의 분야에서 프랜차이징이라는 새로운 아이디어를 65세에 생각하여 그 일을 개척한 진정한 프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