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제 `The man who loved only numbers`로 우리나라에서는 `우리수학자 모두는 약간 미친것입니다.`라는 책으로 번안된 폴 에어디쉬의 삶을 아십니까?
1996년 어느날 비행기를 타고다니는 천재 걸인(?) 방랑자로서의 그의 죽음이 보도 되었을때, 필자는 그를 한명의 천재 기인이라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지금 그를 천재 기인이기에 앞서 진정한 수학만을 위한 삶의 프로로서 재 조명해 봅니다.
그는 하루 19시간을 숫자와 지내며 오직 수학만을 사랑한 기인입니다. 그의 친구들이 무리하지 말고 좀 쉬라고 말하면 죽으면 쉴 시간이 많을 텐데 하면서 늘 "수학자는 커피를 정리(定理)로 둔갑시키는 기계다"라는 우스개 소리를 즐겨 하였다고 합니다.
커피를 정리로 둔갑시키는 기계... 어쩌면 마시는 커피 한잔도 그에게는 수학을 위한 도구 정도로 느껴졌을지 모릅니다. 그는 스스로를 기계에 비유하면서 그를 담금질 했던 것입니다.
헝가리 부다페스트 태생인 에어디쉬(1913 ~ 1996)는 생전에 그 어떤 수학자 보다도 많은 수학 문제들에 대하여 생각하고 해답을 제시했습니다. 그 결과 그가 남긴 논문은 모두 1475편에 이릅니다.
에어디쉬의 수학적 천재성은 3살 때 나타났습니다. 그는 3자리 수의 곱셈을 암산으로 하였고, 4살 때는 음수를 발견하였고, 기차로 태양까지 가는데 걸리는 시간을 계산하였다고 합니다. 또한 어머니 친구들의 나이를 묻고는 그 나이를 암산하여 초로 환산하고, 17살 때는 피타고라스정리를 증명하는 방법을 37가지나 알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러던 그는 21살 되던 해에 수학박사학위를 취득하였습니다.
필자가 그를 단지 수학의 천재로서가 아니라 프로로서 소개하는 이유는 다음과 열정과 노력때문입니다.
그가 1970년에 LA에서 "수학과 함께한 나의 25억년"이라는 제목으로 강연을 한적이 있었는데 그의 나이가 어떻게 25억년 넘었느냐는 질문에 답하기를 "내가 어렸을 때 지구의 나이가 20억년이라고 들었습니다. 그러나 지금 과학자들은 지구가 45억년 되었다고 말합니다. 따라서 나는 그동안 즉 25억년 동안을 지냈지 않았겠습니까?" 고 말하여 청중을 웃기기도 하였다고 합니다.
그가 만년에 쇠약해진 몸에 상관없이 여전히 25개국을 돌아다니며 강연과 연구를 계속하다가 강연 중에 쓰러졌을때, 청중들은 놀라서 어쩔줄을 몰라하고 주최측은 에어디쉬를 눕히며 청중들을 밖으로 내보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마이크를 달고 있던 에어디쉬는 정신을 차리자 마자, "아직 설명할 두 문제가 남아있습니다." 하고 문제를 계속 풀었다는 에피소드는 그의 수학에 대한 열정을 잘 설명해 줍니다.
에어디쉬는 1년에 1500통의 편지를 썼는데 대부분의 편지는 서두부터 수학이야기로 시작되었습니다. 예를 들면 "XX에게, p를 홀수인 소수라고 하자...."라든가 또는 "여기는 호주인데 내일 헝가리로 떠난다. k를 최대의 정수라고 놓자...."하는 식이었다고 합니다.
그래프이론, 소수, 프랜들리수, 완전수, 초월함수, 무한수, 확률, 집합, 몬테칼로 방법 등 수학의 다방면에 걸쳐 해박한 지식을 가졌던 에어디쉬는 6명의 수학자들과 6개의 서로 다른 토픽으로 한 방에서 대화를 나누기도 하는 열정과 해박한 지식의 소유자 였습니다.
에어디쉬의 삶은 참으로 특이하였습니다. 수학을 연구하는 방식에 있어서도 특이하였고, 인생을 살아가는 방식에 있어서도 특이하였습니다.
많은 천재들은 자기 혼자 고독하게 연구하는 것으로 알고 있지만 , 이 천재 수학자 에어디쉬는 자기의 생각을 다른 사람에게 전달하고 싶어서 안달을 하는 이상한 천재였습니다.
하지만 결코 자만하거나 학문을 하는데 현학적이지 않았습니다. 그가 낸 총 1475편의 논문 중 상당수의 논문이 공동연구 논문이었고 여기서 유명한 에어디쉬 번호가 만들어졌는데, 에어디쉬와 공동저서를 낸 사람에게는 에어디쉬 번호 1번이 부여되고, 그 공동저자와 공동연구 논문을 낸 사람은 에어디쉬 번호 2번, 이렇게 하여 에어디쉬 번호 7번까지 확인이 되었다고 합니다.
수학계에서 에어디쉬 번호를 갖는 것이 영광스러운 일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에어디쉬 번호의 특성에 대한 수학적 이론이 등장할 정도였다고 합니다.
그만큼 많은 공저자를 가지고 있다는 것은 그의 개방적인 심성에도 있지만 그만큼 그와 교류한 다른 사람에게 심리적 편안함을 주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수학자들은 대부분 자기의 업적을 도둑맞기 싫어서 핵심 아이디어를 동료에게 말하지 않는 경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무일푼의 에어디쉬와 그렇게 많은 공동연구를 하게 된 것은 그와의 교류가 손해보다는 그들에게 주는 이득이 많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것은 에어디쉬의 인간됨에 대한 한 단면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그는 아이들을 좋아할 뿐만 아니라 아이들과 쉽게 친해졌으며, 파티에 참석하여 외로이 혼자 있는 노인의 말동무가 되어 주었다거나, 강연료를 받아서 나오다가 불쌍한 거지에게 강연료에서 그날 자기 용돈만 빼고 전부 주어버렸다거나, 멕시코 지진 후원단체에 성금을 보냈다는 등의 이야기는 천재이면서 지극히 인간적인 그의 심성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일생을 집도 없이 살면서 아무 걱정 없이 세계를 여행하며 살 수 있는 그 자유로움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요? 재산이 오히려 귀찮은 존재가 되며 아무 가진 것 없이도 그처럼 부족함 없이 살다 갈 수 있는 비결은 무엇일까요?
수학이 애인이었고, 수를 생각하는 것이 가장 즐거운 일이었으며, 수학이 곧 인생이었던 한 우둔하기까지한 천재 수학자의 이야기를 통해서 단순히 천재이기에 앞서 정열과 노력으로 점철한 삶을 프로의 인생으로 반추해 봅니다.